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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평택공장도 돌린다…완공 앞둔 34km '전력 고속도로' 가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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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평택 고덕변환소 건물 내 제어실. 북당진-고덕 HVDC 송전망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평택=정종훈 기자

평택 고덕변환소 건물 내 제어실. 북당진-고덕 HVDC 송전망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평택=정종훈 기자

15일 오후, 경기 평택의 한국전력 고덕변환소. 증설 공사가 한창인 반도체 생산시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마주 보는 이곳은 일반 변전소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했다. 야외엔 전압을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가 빼곡히 서 있었다. 건물 내부 제어실로 들어서자 전력 송전 상황을 알려주는 수많은 불빛이 반짝였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는 교류·직류 변환 장치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직류로 송전된 전력을 다시 교류로 변환시켜 수요지에 보내주기 위한 핵심 설비다. 지진 같은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지면·천장과 일부러 간격을 띄웠다. 한전 평택전력지사의 조윤행 차장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설비"라면서 "24시간 온도·습도를 조절하고, 먼지를 막기 위해 1년에 한 번만 들어가 점검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평택 고덕변환소 내 교류ㆍ직류 변환 장치. 지진 등 천재지변에 따른 사고를 막기 위해 천장에 매달려있다. 사진 한전

평택 고덕변환소 내 교류ㆍ직류 변환 장치. 지진 등 천재지변에 따른 사고를 막기 위해 천장에 매달려있다. 사진 한전

고덕변환소는 10년 가까이 약 1조2000억원을 들여 구축한 34㎞ '전력 고속도로'의 종착점이다. 충남 서해안의 화력 발전력 등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국내 첫 육상 HVDC(초고압직류송전) 북당진-고덕 사업의 일환이다. 1단계 시설은 2020년 말 준공됐고, 2단계도 내년 1월부터 본격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다. 흔히 쓰이는 교류 송전망은 전력 손실 등이 많지만, 직류 중심의 HVDC는 전송량 제어 같은 계통 안정화나 장거리 송전 시 효율이 높다는 장점을 갖는다. 전자파도 적게 나오는 편이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해저·땅속을 넘나드는 송전선로로 3GW에 달하는 전력을 운반할 수 있다. 이는 서울 전력 사용량의 약 30%에 달한다. 특히 맞붙어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고덕 국제화지구를 비롯해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경기 남부 지역에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해진다. 값비싼 열병합 발전소 등에 의존하던 이 지역 전력 수급에 숨통이 트이고 첨단산업 발전에도 기여하는 셈이다. 또한 송전망 부족에 따른 충남 지역 발전소의 출력 제한도 점차 해소될 전망이다.

평택 고덕변환소는 주요 전력 수요지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맞닿은 위치에 있다. 변환소 야외에서 바라본 평택캠퍼스 모습. 평택=정종훈 기자

평택 고덕변환소는 주요 전력 수요지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맞닿은 위치에 있다. 변환소 야외에서 바라본 평택캠퍼스 모습. 평택=정종훈 기자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전은 이른바 차세대 송전망인 HVDC를 적극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특히 발전소와 거리가 멀거나 전력 수요가 몰린 지역일수록 전력 고속도로 필요성이 크다. 대표적인 게 국토를 가로세로로 연결하는 국가 HVDC 기간망이다. 동해안 원전·화력 발전력 등과 수도권을 잇는 '동서 횡단' HVDC는 2026년 6월까지 2단계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8GW에 달하는 전력을 수도권에 실어나를 수 있다. 원전·신재생 설비가 집중돼 발전력이 남는 호남·서해안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남북 종단' HVDC도 약 8조원을 들여 2036년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여기엔 주민 수용성 등을 고려해 육상 대신 해저 송전선로를 깔기로 했다.

송전망 건설·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도 나섰다. 한전은 이미 일본·프랑스와 손을 잡고 UAE에 약 5조원 규모의 HVDC 해저송전망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한전이 지은 바라카 원전 등에서 생산한 전력을 해상 원유 시추 시설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글로벌 HVDC 시장 규모는 올해 113억 달러에서 2030년 178억 달러로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다. 한전 사업자는 "UAE 외에 다른 국가에서도 건설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 고덕변환소 내에 전시된 전력 케이블 모습. 북당진-고덕 HVDC 일부 구간은 해저 터널로 3개의 케이블이 지나간다. 평택=정종훈 기자

평택 고덕변환소 내에 전시된 전력 케이블 모습. 북당진-고덕 HVDC 일부 구간은 해저 터널로 3개의 케이블이 지나간다. 평택=정종훈 기자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다만 숙제도 있다. 누적된 적자로 한전 재무 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HVDC 건설을 더디게 만드는 주민 보상 문제 등이 갈수록 커진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갈등 조정 등을 돕고, 철도 같은 SOC(사회간접자본) 사업과 동반 추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빠르게 제정돼야 HVDC 구축에 속도가 붙을 거란 목소리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수도권에 반도체·2차전지 등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 있고 전력 수요도 늘어나는 만큼 특별법이 마련돼야 한다. 원전 활용도를 높이려는 여당과 재생에너지 송전이 막힌 야당이 합의를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새로 개척하는 '미래 먹거리'인 만큼 기술 자립도도 끌어올려야 한다. 한전 관계자는 "국내 전력 케이블 업계는 세계 5위권이지만, 직류 변환설비 기술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고부가 기술인 HVDC의 틈새시장을 우선 공략하고, 빠른 국산화를 통해 신산업 육성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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