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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 원주극장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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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영국 브라이튼의 113살 된 영화관 ‘듀크 오브 요크’에는 지금도 최신 블록버스터와 추억의 명화가 상영된다. 1910년 설립 이후 지금껏 변함없이 사랑받는 도시 문화재로 자리 잡았다. 1911년 첫 영화를 상영한 독일 베를린의 베트슈피겔 영화관은 2009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했지만, 독일 최고령 영화관이란 상징성이 부각되며 독일 정부·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설립 100주년인 2011년 재개관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영화관의 부활에 발판이 된 건 극장이 시민 문화유산이란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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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가. 지역 시민·문화예술가들이 수년간 되살리려 노력해온 원주 아카데미 극장(사진)을 최근 원주시가 끝내 철거했다. 1963년 개관해 올해 환갑을 맞은 이 극장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2006년 문을 닫았지만 추억을 간직한 지역민들이 뭉쳐 상영 및 전시 등을 진행하며 활용방안을 고민해왔다. 원주시를 설득한 끝에 2022년 1월 시가 부지를 매입하며 보존에 무게가 실렸지만 같은 해 새 시장이 취임한 후 철거 후 공연장·주차장 건설로 운명이 뒤집혔다. 시민들의 수년간 노력이 1년도 안 돼 물거품이 됐다.

당시 철거 반대 운동을 이끈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우리나라에선 유서 깊은 영화관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논의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원주시가 투명한 논의 과정을 거부하고 철거를 강행한 것도 전임 시장 흔적 지우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1930년대 건축양식이 보존돼온 서울의 스카라극장·국도극장 등이 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재산권 제한을 우려한 소유주에 의해 철거된 적이 있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 올해 탄생 104주년을 맞는 한국 영화계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