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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끈끈한 북·중 경제협력의 70년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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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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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간에는 많은 협정이 있다. 그 가운데 경제 분야에서 최초의 협정은 1953년 11월 23일 체결한 ‘조·중 경제 및 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김일성이 1953년 11월 10일~27일 베이징을 방문해 체결한 것이다. 그는 6‧25 전쟁 때 중국인민지원군의 지원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대규모 경제 지원을 요구했다.

중국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국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말까지 북한에 지원한 모든 원조를 무상으로 했다. 여기에 북한 경제의 부흥을 위해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인민폐 8억 위안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중국 경제 사정을 보면 ‘통 큰’ 결정이었다. 그것은 소련의 영향도 있었다. 김일성은 베이징 방문에 앞서 1953년 9월 1일~29일 소련을 방문해 10억 루블을 무상 지원으로 받았다. 당시 김일성이 중‧소를 대상으로 보여준 수완은 탁월했다.

8억 위안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석탄‧천‧면화‧건축 기자재‧교통 기자재‧금속제품‧기계‧농기구‧어선‧종이와 문구 및 주민 생활의 기타 일용 필수품들이 포함됐다.

김일성은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핵심을 전부 데리고 갔다. 박정애 당 부위원장‧홍명희 부수상‧남일 외무상‧정준택 국가계획위원장‧윤공흠 재정상‧김회일 철도상‧주황섭 도시경영상‧서철 주중 북한 대사 등이다. 마오쩌둥도 중국의 핵심을 전부 모았다. 저우언라이 총리 겸 외교부장‧주더 부주석‧류사오치 부주석‧가오강 국가계획위원회 주석‧둥비우 부총리‧천윈 부총리‧덩샤오핑 부총리‧궈모루 부총리‧리커농 외교부 부부장‧왕빙난 외교부 판공청 주임 등이다.

‘조‧중 경제 및 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은 이처럼 북‧중 고위 핵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체결했다. 3개 조항으로 된 이 협정은 상호 간에 각종 가능한 경제와 기술을 원조하고 필요한 경제와 기술협력을 진행하며 양국의 문화교류사업을 촉진한다는 내용이다.

저우언라이는 “이 협정은 1953년 9월 북‧소 간의 회담 성과와 함께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의 반석처럼 견고한 단결을 충분히 증명했다”며 축하했다. 중국의 대북 지원은 소련의 대북 지원과 궤를 같이한다는 의미다. 당시 중국은 소련일변도의 외교 정책을 고수하던 때라 이런 연설이 가능했다.

저우언라이는 이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조선 인민들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적인 생활을 재건설하며 새로운 휘황한 성과를 거두길 축원한다”고 말했다. 류사오치도 거들었다. 그는 “마오쩌둥 주석이 친히 참석한 자리에서 친밀하고 조화로운 회담을 거행하고 장기적인 협력‧상호원조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고 치사했다.

이에 김일성은 중국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며 “이 협정은 조‧중 두 나라 인민 간의 전통적이고 깨뜨릴 수 없는 친선단결을 더욱 공고히 하고 발전시킬 것”이라고 화답했다. 또한 그는 “이를 통해 두 나라 인민들의 생활상의 절실한 이익을 보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국민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지 모르지만, 김일성은 그렇게 표현했다.

중국은 협정을 체결하고 8억 위안을 지원하면서 어떤 계산을 했을까?  

조‧중 연합군이 유엔군과 싸운 것은 중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에 관심이 컸다. 6‧25 전쟁 이후 북한 경제의 회복과 발전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경제회복은 중국 국민 모두에게 안전보장을 강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인민일보는 1953년 11월 24일 논설에서 북한이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고 경제를 회복하고 발전하도록 중국 정부와 국민은 모든 힘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김일성은 중‧소로부터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6‧25전쟁 때 파괴된 철도를 복구하는 데 사용했다. 중국은 북한에서 파견된 기술노동자들을 교육하고 반대로 중국 기술자를 북한에 파견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 학생들을 중국의 각 대학과 전문학원에서 공부하도록 조치했다. 그런 다음에 자동차 운행, 해상 운송, 항공 운송 등 운송로를 확보하는 작업을 했고, 이후 각종 공장을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조‧중 경제 및 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된다. 북한은 지난 11월 23일 냉면으로 유명한 평양 옥류관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북한은 강윤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문성혁 당 국제부 부부장‧박명호 외무성 부상‧류은해 대외경제성 부상‧박경철 문화성 부상 등이 참석했다. 중국은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가 동참했다.

류은해 부상은 축사에서 “이 협정은 70년 동안 북‧중 양국 인민 간의 우호 단결을 공고히 하고 경제‧문화 분야의 교류‧협력을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왕야쥔은 “시진핑-김정은의 직접적 관심과 전략에 따라 양측은 ‘중‧조 경제 및 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의 정신을 계승하고 우호적인 교류와 실무적 협력을 지속해서 강화하자”고 말했다.

베이징에서는 평양보다 닷새 뒤인 11월 28일 기념행사가 열렸다. 중국은 톄닝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고, 북한은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가 동참했다. 톄닝은 루쉰 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여류 소설가다. 여성 최초로 중국작가협회 주석이 된 스타 작가다. 평양과 베이징 모두 국회 부의장이 대표로 참석한 셈이다. 5년 전인 2018년에도 평양과 베이징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그때도 같은 급이 대표로 참석했다. 70년 전과 비교할 것이 아니지만, 왕야쥔의 말마따나 그 정신만 남은 것 같다. 양국 관계의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시진핑-김정은 정상회담은 2019년 6월 이후 아직 없다. 양측의 기념일에 의례적으로 축전을 보내는 것 외에는 없다. 내년은 북‧중 수교(1949년 10월 6일) 75주년이 되는 해다. 이날을 기념해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현저히 낫다. 그리고 그때는 미국 대선이 가까워져 더 어려워 보인다. 한동안 중단된 중국을 통한 대북 외교도 개점휴업 상태가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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