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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족쇄 아니라 로또였다…'반값 아파트' 10년 전매제한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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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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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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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총선을 앞둔 21대 국회의 사실상 마지막 시즌에 주택시장 규제 완화를 둘러싼 희비가 엇갈렸다. 재건축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돼온 재건축부담금을 완화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안과 1기 신도시 등의 재정비를 지원하는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은 거의 원안대로 통과했지만 재건축부담금 법안은 정부가 발표한 완화 수준에 못 미쳐 재건축 단지들에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 강남보금자리지구에 2012년 2억2000만원에 분양한 토지임대부 시세가 현재 11억~12억원으로 올랐다. 분양가는 일반 아파트의 60% 수준이었으나 시세는 80% 선에 형성돼 있다. 사진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 강남보금자리지구에 2012년 2억2000만원에 분양한 토지임대부 시세가 현재 11억~12억원으로 올랐다. 분양가는 일반 아파트의 60% 수준이었으나 시세는 80% 선에 형성돼 있다. 사진 한국토지주택공사

신규 분양 아파트 당첨자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과 취득세 다주택자 중과를 완화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은 야당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가 발표한 규제 완화를 믿고 기다려온 당첨자나 다주택 매수자는 당황스럽다.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으면 당첨자는 잔금을 치르는 것과 동시에 입주해야 한다. 자금 사정 등으로 입주를 미루려던 당첨자로선 낭패다. 다주택 매수자는 중과 적용을 받아 납부한 취득세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지, 얼마나 돌려받을지 불확실하다.

국회서 토지임대부 법안 통과
10년 지나면 시장서 전매 가능
5~10년엔 시세 70% 공공 매입
SH 물량 적어 실험 그칠 수도

이런 가운데 입법 논의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대박’ 법안이 있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하 토지임대부)에 최장 10년의 전매제한을 두는 주택법 개정안이다. 전매제한이 되레 ‘로또’를 낳게 되는 역설은 왜 가능할까.

소유권은 '반쪽', 분양가는 '반값' 

토지임대부는 현 정부가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도입한 여러 주택 유형의 하나다. 정부는 땅값과 건축비 범위에서 산정하도록 해 시세보다 저렴한 기존 분양가상한제 가격을 추가로 더 인하했다. 상한제로 가격을 산정하되 주변 시세의 80%(일반형)나 70%(나눔형)를 넘지 못하게 했다. 나눔형은 다시 상한제 가격을 80%로 낮추는 '이익공유형'과 토지(대지지분)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로 나뉜다.

분양가 산정방식을 비교하면 토지임대부가 가장 저렴하다. 같은 단지에서 주변 시세를 100으로, 분양가상한제 가격을 80으로 본다면 분양가가 일반형 80, 이익공유형 64(상한제 가격 80의 80%)다. 토지임대부는 50 이하다.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 건축비가 대개 토지비보다 적다.

6월 사전청약에 나온 마곡10-2단지 토지임대부 조감도. SH

6월 사전청약에 나온 마곡10-2단지 토지임대부 조감도. SH

토지임대부에는 다른 유형에 없는 토지임대료라는 추가 비용이 있지 않은가.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다른 유형 아파트의 대출 이자보다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토지임대부의 토지임대료 계산 기준이 일반 상한제 아파트의 토지비인 감정평가금액보다 저렴한 데다 임대료 계산 이자율도 주택담보대출보다 낮다.

토지임대부는 독특한 분양방식 등으로 인해 별명이 많다. 건물과 땅이 일체로 이뤄진 아파트에서 건물만 분양하다 보니 ‘반쪽 아파트’, 가격을 일반 분양가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서 ‘반값 아파트’로 불리기도 한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해 ‘김헌동 아파트’라는 별명도 얻었다. 토지임대부는 지난해 12월 현 정부의 첫 공공분양 사전청약부터 지난 9월 3차까지 줄곧 나왔고 이달 4차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SH가 개발하는 서울 고덕 강일지구와 마곡지구에서다.

시세차익 얻지 못하는 '임대'

분양가가 시세의 반값이면 상당한 시세차익을 보장하는 ‘로또’일 텐데 토지임대부는 그러지 못했다.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깡통 로또’였다. 전매 제한이 없었지만 치명적인 규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매하더라도 시장에서 자유롭게 시세에 따라 개인 간에 거래할 수 없고 공공에 되팔아야 했다. 공공이 매입하는 가격은 분양가에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 정도를 합친 금액이었다. 시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토지임대부가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분양주택임에도 ‘임대아파트’라는 비판을 받은 이유다. 수요자 입장에선 분양가를 보증금처럼 주고 들어가 매월 월세나 마찬가지인 토지임대료를 내고 살다가 나올 때 거의 분양가 그대로 돌려받는다. 자본이득이 없는 임대차계약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토지임대부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전청약에서 인기를 끈 것은 정부가 토지임대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지난해 주택공급 대책 때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여야 합의로 지난 8일 극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전매제한 기간에는 '70% 환매'

이번 개정안은 기존에 없던 전매제한을 뒀다. 최장 10년의 전매제한 대상에 토지임대부를 포함했다. 전매제한이 풀린 이후에는 기존처럼 공공에 환매할 필요 없이 시장에서 시세대로 팔 수 있다. 정부는 전매제한 기간에도 일정한 시세차익을 보장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거주의무 기간 5년이 지나고 전매제한 기간 10년이 지나기 전에는 시세의 70%로 공공에 매각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주택공급 대책 때 이익공유형에 대해 5년 거주의무 기간이 지나면 시세의 70%로 매입하기로 했다. 시세차익을 당첨자 70%, 공공 30% 나눈다는 점에서 나눔형이란 이름을 붙였다. 토지임대부는 같은 나눔형인 이익공유형보다 시세차익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다. 이익공유형은 분양받은 지 10년 뒤에도 계속 ‘70% 환매‘가 적용되지만 토지임대부는 이마저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개정법은 내년 상반기 시행 이후 본청약 모집공고를 내는 단지부터 적용하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 사전청약하는 토지임대부도 해당한다.

연말 국회에서 ‘역대급’ 로또가 태어났지만 앞으로 토지임대부 물량이 많지 않아 로또를 기대하는 수요자에겐 당첨이 ‘낙타 바늘귀 들어가기’가 될 것 같다. 택지 고갈로 토지임대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SH가 공급할 물량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김헌동 SH사장이 “3기 신도시에 토지임대부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정부와 경기도 등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김선주 경기대 교수는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토지임대부가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처럼 실험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