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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의 지하벙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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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하와이 카우아이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대규모 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뉴스에서 특히 관심을 끈 대목은 지하에 465㎡ 넓이의 지하 벙커가 들어선다는 사실이었다. 저택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게 되는 이 벙커에는 콘크리트로 채워진 금속문이 설치되어 비상시 거주자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 무엇보다 저커버그가 그런 벙커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낄 만한 외부의 위협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갑부 중에는 사회의 붕괴, 인류의 종말과 같은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비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과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도 사회 붕괴에 대비한 생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페이팔과 팰런티어의 창업자 피터 틸은 뉴질랜드 사우스아일랜드에 벙커 형태의 대규모 생존 거처를 만들다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지방 정부로부터 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레딧의 CEO 스티브 허프먼은 모터사이클과 총·탄약을 사 모으고 생존에 도움이 될 거라며 레이저 눈수술을 받기도 했다.

과학소설을 좋아하는 갑부들의 가벼운 놀이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인터넷과 AI 등으로 인류 사회를 급격하게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곱게 보기 힘들다. 이들 중에는 “인류사회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해도 기술 발전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바마 부부가 제작자로 나선 넷플릭스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서는 사회가 붕괴하는 징후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먼저 달아난 부자의 얘기가 나온다. 테크 갑부들이 인류 사회의 붕괴를 우려한다면 집에 벙커를 만들 게 아니라 그들이 파는 제품과 서비스를 안전하게 만드는 게 맞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