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한파 덮친 쪽방촌 가보니
“바람을 막고 또 막아도 또 어디서 후벼파고 들어오니… 털모자 쓰고, 점퍼 껴입은 채로 버틸 수밖에요.”
수도권에 한파 경보가 발령된 18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에 있는 비닐하우스촌 ‘꿀벌마을’에 사는 박모(58)씨는 밤새 타고 남은 연탄을 보일러에서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지내는 33㎡(1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 앞엔 연탄보일러가 설치된 창고가 있다. 연탄보일러의 온기가 닿는 아랫목은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1㎡ 크기에 불과했다. 박씨는 “5년 전 서울 강남에서 분식집을 하다 망해서 이리 흘러들어 왔다”며 “재수하던 딸은 이사 와서 겨울을 네 번 겪더니 숨이 얼어서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독립했다”고 말했다.
꿀벌마을은 벌집처럼 생긴 검정 가림막을 두른 비닐하우스에서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약 400가구, 주민 700여 명이 모여 사는 걸로 추산된다. 상·하수도나 도시가스, 포장 보행로 등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집 아닌 집’에서 보일러도 없이 전기난로·장판에만 의존해 한겨울을 나는 노인·장애인 주민들도 수두룩하다.
39년째 꿀벌마을에 거주하는 문인순(48)씨는 “푹푹 찌는 여름보다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겨울이 더 고달프다”며 “땅이 꽁꽁 얼어 노인분들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겨울철만 되면 팔다리에 깁스를 한 어르신이 많아진다”고 했다.
“바람 못 막는 비닐집, 숨도 얼어…의지할 건 연탄보일러뿐”
15년 전 아들과 함께 이사 온 김모(68)씨는 “연탄보일러는 10~12시간에 한 번씩 갈아야 해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꿈도 못 꾼다”며 “몸을 웅크리고 동장군이 은혜를 베풀며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꿀벌마을에서 15㎞ 떨어진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주민들도 갑자기 찾아온 한파에 비상이 걸렸다. 8년째 쪽방촌에 거주 중인 신동왕(67)씨는 “미지근한 방바닥보다 공용 화장실의 한기가 진저리 난다”고 했다. 그는 “쪽방 주민들과 같이 쓰는 공용 화장실이 있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와 목욕하려면 겨울엔 한 달에 두 장 나오는 목욕 쿠폰을 가지고 영등포시장까지 걸어가야 한다”며 “구청장이 몇 년 전에 갖다준 솜이불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보일러가 있는 일부 쪽방 주민들은 난방비 부담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쪽방에 거주하는 김성식(70)씨는 “석유 20L 한 통에 3만2000원인데, 여덟 통을 넣어야 한 달을 버틸 수 있다”며 “따뜻하게 지내려고 온도를 올리면 매달 25만원 이상 난방비가 든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아내 배의자(67)씨는 “석유 보일러가 있어서 바닥은 따뜻한데, 외풍이 세서 코가 시리다”고 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지난 15일부터 ‘노숙인·쪽방 주민 겨울철 특별보호대책’을 시행 중이다. 영등포를 비롯해 종로구, 중구, 용산구 등 4개 구에 밀집한 쪽방촌 주민 수는 서울시 추산 2360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한파로 인한 동사 위험 등 긴급 돌봄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675명이 사용할 수 있는 응급 구호시설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다만 주거 개선 대책으로 10만㎡ 이내의 노후 저층 주거지를 묶어 정비하는 소규모 주택정비 사업(가로주택정비사업)이 언급되는 데 대해선 불안해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영등포 쪽방 주민 우태일(61)씨는 “5년 전부터 영등포 쪽방촌을 서둘러 개발한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왔다”며 “계속 살 수 있을지, 또 이사해야 하는 건지 걱정”이라고 했다. 꿀벌마을은 이미 3기 신도시 과천지구(169만㎡) 사업지에 포함됐다. 조도원 꿀벌마을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국토교통부와 LH는 경제적 실정에 맞는 주택으로의 주민 이주를 약속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