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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카카오의 ‘브러더’와 ‘지긋지긋한 반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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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카카오의 SM엔터 인수 문제, 김정호 카카오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의 사내 비위 폭로전 등으로 김범수 창업자의 ‘브러더(brother) 경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창업자와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형·동생 문화로 뭉쳐 서로의 문제를 묵인한다는 평가가 카카오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달 29일 김 총괄의 폭로를 다룬 보도 외에도, 또 다른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과 투자 목적의 지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이하 버크셔)를 이끌던 찰리 멍거(향년 99세)의 부고 기사였다.

‘이사회 구성에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지난 5년간 공개된 주요 의결 사항에 반대표가 나온 적 없는 카카오만의 얘기는 아니다. 버크셔도 ‘친구나 가족 중심 이사회’란 지적을 받는다. 버크셔와 카카오는 업종과 상황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사회가 비판받고 창업자 또는 리더가 단짝을 기용한다는 점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버핏의 파트너이자 브러더인 멍거는 카카오의 브러더들과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지긋지긋한 반대자’였던 생전의 찰리 멍거 부회장(오른쪽). [AFP=연합뉴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지긋지긋한 반대자’였던 생전의 찰리 멍거 부회장(오른쪽). [AFP=연합뉴스]

멍거는 다른 사람들이 버핏에게 ‘노’라고 말하기 주저할 때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죽하면 버핏이 멍거를 ‘지긋지긋한 반대자’라고 불렀을까. 버핏은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극도로 논리적인 파트너의 존재야말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메커니즘”이라며 멍거를 치켜세웠다. 미국 저널리스트 윌리엄 그린의 『돈의 공식』(Richer, Wiser, Happier)에 따르면, 멍거는 자신에게도 철저히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과 같이 자신과 의견은 달라도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글을 빠짐없이 찾아 읽었다고 한다.

‘위대한 투자자이자 반대자’란 말이 손색없는 멍거는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정리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덜 어리석게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적게 한 것뿐이다.” 그는 남들보다 덜 어리석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어리석음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그린은 『돈의 공식』에서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들여다볼수록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줄어든다”면서 다음과 같은 멍거의 말을 인용한다.

“저는 자신이 완전한 멍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자신의 실수를 자꾸 상기해야 다음에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경이로운 비결을 체화해야 합니다.”

실제로 멍거는 2017년 4만 명 주주 앞에서 구글과 월마트 주식을 매수하지 않은 것을 자신과 버핏의 실수라고 고백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일과 삶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고, 나를 위해 쓴소리를 해주는 이들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실수를 반복했지만, 쇄신을 준비하는 카카오뿐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의사결정 책임자들은 더욱 그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