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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서 들린 곡 '레미제라블'…"정치·생활 힘든 나라서 공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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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세계 4대 뮤지컬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의 대본, 작사를 맡은 프랑스 작가 알랭 부브리. '레미제라블'의 세 번째 한국 공연에 맞춰 처음 내한했다. 15일 그를 만났다. 장진영 기자

세계 4대 뮤지컬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의 대본, 작사를 맡은 프랑스 작가 알랭 부브리. '레미제라블'의 세 번째 한국 공연에 맞춰 처음 내한했다. 15일 그를 만났다. 장진영 기자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Singing a song of angry men(분노한 사람들의 노래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장엄한 메인 넘버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가사다.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이 뮤지컬의 영화판(2012)이 글로벌 흥행하며 튀르키예‧미얀마‧홍콩 등 민주화 운동·집회 현장의 단골 합창곡으로 친숙해졌다. 한국에선 2016년 촛불시위 현장에서 불렸고, 올 초 여당 전당대회에서 연주곡으로 틀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인 ‘레미제라블’은 베트남전 배경의 ‘미스 사이공’과 함께 K 창작 뮤지컬 롤모델로 자주 언급된다. 시대의 격랑에 휘말린 개개인의 인생사라는 주제가 우리에서도 낯설지 않아서다.
‘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은 프랑스 작가 알랭 부브리(83)와 작곡가 클로드 미셸 숀버그(79) 콤비가 영국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손잡고 만든 작품들이다. 1985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한 ‘레미제라블’은 지금까지 53개국 22개 언어로 공연돼 1억3000만 명이 봤다. 동명 영화 수록곡 ‘서든리(Suddenly)’는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프랑스 작가 알랭 부브리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세계 4대 뮤지컬 극작‧작사 #“정치적‧생활 힘든 나라 공감”

부브리 "뮤지컬 '올리버' 보다 벼락 맞듯 '레미제라블' 떠올라"

2013년 초연한 한국어판 뮤지컬 ‘레미제라블’ 3번째 시즌이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이다. 이에 맞춰 처음 내한한 알랭 부브리를 지난 15일 서울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만났다. 부브리는 방대한 소설 원작을 대본과 가사로 옮겼다. “내게 ‘레미제라블’의 성공은 동화 같은 이야기”라며 “1979년 런던에서 뮤지컬 ‘올리버’를 보다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이 벼락 맞듯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출발점은.

“숀버그와 록 뮤지컬 ‘프렌치 에볼루션’을 함께 작업한 뒤 오페라 형식의 후속작을 찾고 있었다. ‘레미제라블’은 원작이 워낙 방대해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곡을 완성하고 몇 주간 손에 들고만 있다가 1980년 프랑스에서 앨범을 먼저 냈는데 대성공이었다. 파리에서 3개월간 뮤지컬을 올렸다. 3년 뒤 뮤지컬 ‘캣츠’ 제작자라는 영국인이 전화를 했다. 카메론 매킨토시였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매킨토시의 제안으로 현재 널리 공연 중인 영어 버전이 탄생했다. 파리 공연에서 도입부를 바꿨다. 프랑스판은 판틴이 공장에서 부르는 넘버 ‘앳 디 엔드 오브 더 데이(At the End of the Day)’로 시작하지만, 영어판에선 장발장이 감옥에서 가석방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프랑스에선 학교에서 열 살 때부터 ‘레미제라블’을 배워 내용을 잘 알지만, 글로벌 관객은 장발장의 배경을 모를 수 있다”는 게 부브리의 설명이다.

"레미제라블, 정치적·생활 힘든 나라서 공감"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하는 전과자 장발장은 가난한 고아 소녀 코제트와 혁명의 시대를 헤쳐나간다. 영국 초연 연습을 할 때는 없었던 경감 자베르의 넘버 ‘스타즈(Stars)’, 장발장 초연 배우의 폭넓은 음역대에 영감 받은 ‘브링 힘 홈(Bring Him Home)’은 원작에 오히려 충실하게, 영어판에 새로 추가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와 넘버는.  

“코제트라고 해야 할까. 실은 내가 파리 공연 때 코제트 배우 중 한 명(마리 자모라)과 결혼했다.(웃음) 에포닌도 불가능한 사랑과 인생을 사는 독특한 캐릭터라 마음이 갔다. 장발장도 쓸 때 즐거웠지만,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싶진 않다. 노래 중에서는 학생들이 바리케이드에서 부르는 ‘드링크 위드 미(Drink With Me)’, ‘브링 힘 홈’에도 마음이 가지만, 판틴의 넘버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은 일종의 기념품이다. 원작소설의 한 챕터에서 제목을 따왔는데 프랑스어로 ‘나는 다른 삶을 꿈꾸었다’란 뜻이었다. 이 작품을 만들 때 숀버그와 처음 썼던 곡이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유명한 바리케이드 장면. 사진 UPI코리아, 레미제라블코리아

영화 '레 미제라블'의 유명한 바리케이드 장면. 사진 UPI코리아, 레미제라블코리아

-오디션이 엄격하다고 소문났는데.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교감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나라마다 쉽게 찾기도 하고 어려울 때도 있는데 일본의 첫 오디션은 힘들었던 거로 기억한다.”

-세월이 지나도 ‘레미제라블’이 사랑받는 이유는.  

“빅토르 위고의 천재성이다. 시대를 초월한 소설을 썼다. 살다 보면 자베르·판틴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작품 넘버가 시위 현장에서 불리는 것도 놀랍지 않다. 정치적으로나 생활이 힘든 나라, 삶이 힘든 사람들이 공감을 많이 한다.”

"한국은 대조 많은 나라, 한국말 노래하는 것 같아"

프랑스어 제목 ‘레미제라블(LesMisérables)’을 나라마다 대부분 그대로 쓴다. 부브리는 “번역하면 원제의 중의적 표현을 담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며 “프랑스어 '레미제라블'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쁜 짓을 한 범죄자를 뜻한다. 빅토르 위고의 철학은 결국 궁핍함이 범죄자로 살게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알랭 부브리는 뮤지컬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드라마를 꼽았다. 장진영 기자

알랭 부브리는 뮤지컬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드라마를 꼽았다. 장진영 기자

부브리는 일찌감치 내한해 2주간 서울‧제주도‧전주‧경주‧부여 등을 여행했다. “한국은 대비되는 게 많은 나라 같다. 조선 시대의 고전적 느낌이 현대와 어우러져 공존한다는 게 신기하다”고 첫인상을 밝혔다. 또 “한국어판 ‘레미제라블’ 원격 오디션 때 배우들 목소리가 아름답고 훌륭해서 공연도 큰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한국어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선율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한국어를 말할 때 노래하듯이 음정이 실리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레미제라블’ 공연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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