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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법 때문이었다…'성범죄 2범' 택시기사 또 女승객 성폭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두 차례 성범죄 전력이 있던 택시 기사가 또 다시 술에 취한 여성 승객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범죄 이력은 택시 운행을 계속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최재아 부장검사)는 지난달 4일 오전 6시 20분쯤 서울 마포구 인근에서 만취해 택시에 탑승한 대학생을 인근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택시기사 A씨(61)를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뉴스1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뉴스1

‘면허취소’ 택시 중 28.9% 성범죄…벌금형 자격제한 없어

A씨는 “술 취한 승객을 모텔에 데려다 준 후 모텔비를 받기 위해 다시 들어갔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을 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만취한 피해자를 모텔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 등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을 토대로 혐의가 입증된다고 판단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2006년 택시 운행 중 24세 여성을 성폭행해 징역 3년 형을 확정받아 복역했고, 2021년에도 강제추행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성범죄 전과자였지만 별다른 제한 없이 택시회사에 재취업했다. 택시기사 면허가 그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지난 10월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범죄경력으로 운수종사자 자격이 취소된 택시 1659건 중 481건(28.9%)이 성폭력처벌법 위반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운수종사자 자격 취소는 현행법상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2년이 지나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성범죄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들을 더하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택시를 운행하는 기사는 더욱 많을 것으로 조 의원 측은 추정하고 있다.

이는 현행법 미비로 인한 규제 사각지대 때문이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성범죄로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출소 이후 20년 이상 운행 자격이 제한된다. 하지만 법 시행 시점인 2012년 8월 이전에 강간죄 등 일반 성범죄를 저질러 처벌받고 출소했다면 아무런 제한 없이 택시기사로 일할 수 있다.

2006년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A씨는 제제 대상이 아니었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A씨의 2년 전 성범죄 이력도 택시 운행을 막진 못했다. 벌금형에 그친 성범죄는 택시 운행 자격 제한 대상이 아니라서다. 성범죄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 유예 종료 후 2년까지만 택시기사 자격이 제한된다. 검찰은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상 ‘성범죄자 취업제한’ 대상에 택시기사가 누락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서부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서부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등록 성범죄자 62%, 3년내 재범…“입법 개선 필요”

실제 성범죄 전과를 가진 일부 기사가 제재 없이 택시를 운행하다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반복됐다. 2019년 2월 강제추행 혐의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은 택시기사 B씨는 두 달 만인 같은해 4월 승객(21세·여)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다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택시기사 C씨 또한 2012년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으나, 이듬해 3월 술에 취해 뒷자리에서 잠든 승객(20·여)을 준강제추행한 혐의로 다시 징역 8월의 처벌이 확정됐다.

검찰은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자의 택시운행을 일부만 제한하고 있는 현행 법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법무부가 발간한 ‘2023성범죄백서’에 따르면 재등록 성범죄자 중 62.4%는 첫 범죄 뒤 3년 안에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최재아 부장검사는 “이동성·밀폐성이라는 특성을 가지는 택시 운행 자격을 성범죄자에게 주는 경우 승객 상대 재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성범죄자들의 택시 운행 자격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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