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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부터 진정한 지옥이 시작한다, 지금 우크라가 그렇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전선이 멈추었을 때

1914년 9월 7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프르는 독일군의 측면이 길게 늘어진 사실을 확인하자 반격을 명령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당황한 독일군은 엔 강까지 철수했고 그렇게 파리를 지켜낸 프랑스군은 한숨을 돌렸다. 사실 독일군도 그동안 쉬지 않고 진격해 왔기에 부대를 재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전선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마른 전투다.

마른 전투 당시 돌격하는 프랑스군. 독일의 진격을 막는데 성공했으나, 이후 전쟁은 지옥의 참호전으로 바뀌었고 이후 4년 동안 수백만의 젊은이가 죽어갔다. 위키피디아

마른 전투 당시 돌격하는 프랑스군. 독일의 진격을 막는데 성공했으나, 이후 전쟁은 지옥의 참호전으로 바뀌었고 이후 4년 동안 수백만의 젊은이가 죽어갔다. 위키피디아

그런데 잠시 쉬고 나서 전투가 재개됐을 때 양측 모두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사이에 축성된 상대편 방어 진지를 넘지 못한 것이었다. 이후 4년 동안 수백만의 젊은이가 비명횡사하며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처럼 여겨지는 지옥의 참호전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래서 마른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전투 중 규모가 가장 크지 않으나, 전쟁사적 의의는 실로 대단하다.

르제프 전투 당시 참호 지대를 돌파하는 독일군. 동부전선 중앙에 형성된 500여㎞의 전선은 1년 동안 외형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없었지만 수백만의 병사들이 죽어 나간 지옥이었다. 위키피디아

르제프 전투 당시 참호 지대를 돌파하는 독일군. 동부전선 중앙에 형성된 500여㎞의 전선은 1년 동안 외형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없었지만 수백만의 병사들이 죽어 나간 지옥이었다. 위키피디아

1942년 1월 7일, 소련군은 모스크바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자 흥분한 스탈린은 즉각 독일군을 추격해서 섬멸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소련군의 승리는 독일군보다 두 배나 많은 100만의 병력을 소모하며 얻은 것이어서 대대적인 재편이 필요한 상태였다. 당연히 주코프를 위시한 군부는 무리한 명령이라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한 번 눈이 뒤집힌 스탈린을 진정할 수 있는 이는 소련에 없었다.

결국 소련군은 쉬지도 못하고 1월 8일, 공세를 시작했다. 덕분에 독일군을 좀 더 몰아냈으나, 1월 말이 되었을 때 독일군의 방어에 막히면서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결국 르제프에 거대한 돌출부가 형성되면서 전선은 기묘한 형태로 정체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후 1년 동안 르제프 일대는 양측 합쳐 최대 300만으로 추산되는 독소전쟁 최대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지옥으로 변했다.

1951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벌어진 단장의 능선 전투 당시 이동 중인 미 2사단 장병들. 휴전을 염두에 두고 6ㆍ25 전쟁이 고지전으로 바뀌었지만 정작 희생은 더욱 늘어났다. 위키피디아

1951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벌어진 단장의 능선 전투 당시 이동 중인 미 2사단 장병들. 휴전을 염두에 두고 6ㆍ25 전쟁이 고지전으로 바뀌었지만 정작 희생은 더욱 늘어났다. 위키피디아

1951년 5월 16일, 공산군은 전쟁을 끝내겠다며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다. 흔히 중공군 6차 공세라고도 불리는 춘계 2차 공세였는데, 국군 3군단이 해체당하는 수모를 겪었을 만큼 초전에 공산군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러나 5월 말 돌파구를 틀어막는 데 성공한 UN군이 곧바로 반격에 나서 깊이 남하한 중공군을 섬멸했고, 6월 중순에 이르러 현재의 휴전선과 비슷한 캔자스-와이오밍 선까지 전선을 걷어 올렸다
.
결국 중국은 자신들의 역량으로 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고, 소련의 개입으로 휴전회담이 시작됐다. 그렇게 6.25 전쟁은 발발한 지 1년이 되었을 때 애초 북한이 남침을 개시한 부근에서 전선이 멈추었고 고지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지만, 이후 2년 동안 그렇게 고착화한 전선 일대는 가장 많은 전사상자가 발생하는 지옥으로 바뀌었다.

정작 밖에서는 모른다

전략ㆍ전술ㆍ작전 등을 세밀히 다루는 전문서가 아닌 개론 정도의 전사 관련 서적을 보면 한가지 공통적인 서술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급격한 기동이 있거나 전쟁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전투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는 반면 전선이 장기간 정체된 시기에 벌어진 교전은 간략히 다루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판세를 바꾸었다는 등의 인상적인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이 열린 개성 내봉장. 자연스럽게 양측 모두 공세를 자제했으나, 회담이 2년이 넘게 이어지고 고지전이 격화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NARA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이 열린 개성 내봉장. 자연스럽게 양측 모두 공세를 자제했으나, 회담이 2년이 넘게 이어지고 고지전이 격화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NARA

6ㆍ25 전쟁사를 예로 들자면 한반도를 남북으로 정신없이 오가던 최초 1년간의 서술 내용이 70 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고지전으로 일관한 나머지 2년간의 내용은 30 퍼센트에 불과하다. 실제로 휴전을 염두에 두고 양측 모두 공세를 삼간 것은 맞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전쟁이 마무리에 들어간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단지 지도상에 그려진 전선이 크게 변하지 않자 관심도 함께 줄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잘못된 부고란 때문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가련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애수(Waterloo Bridge)’에서 보듯이 마른 전투로 제1차 세계대전이 참호전으로 바뀐 이후 신문 부고란에 매일 수백의 전사자 명단이 올라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1916년 벌어진 솜 전투에서 공격에 나선 영국군은 불과 하루 동안 2만여 명 전사, 3만 5000여 명 부상이라는 초유의 참사를 겪었어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거기에 비하면 1942년 르제프 전투는 한마디로 잊힌 지옥이었다. 동시기에 벌어진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어디를 점령해서 차지한 것이 없다시피 하니 정작 전사에 기록된 내용이 많지 않다. 6ㆍ25 전쟁의 고지전도 마찬가지다. 예상보다 희생이 커지자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가 이렇게 싸울 수 없으니 공세로 전환하자고 상부에 간청했을 정도였다.

1916년 7월 1일, 영국군 공병이 독일군 진지 지하에 비밀리에 매설한 폭약을 폭발시키면서 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개전 첫날 영국군은 하루 동안 역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보았다. National Army Museum

1916년 7월 1일, 영국군 공병이 독일군 진지 지하에 비밀리에 매설한 폭약을 폭발시키면서 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개전 첫날 영국군은 하루 동안 역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보았다. National Army Museum

이처럼 전선이 굳어지면 그때부터 전쟁은 잔인하게 바뀐다. 단순히 군사적으로 봐도 전선이 정체했다는 것은 양측의 힘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겉으로는 전선의 변화가 미미하지만, 엄청난 전력 소모가 벌어지고 당연히 비례해서 피해도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지도만 보고 있는 이들은 마치 싸우지 않는 것처럼 여기기에 지옥을 소강상태라고 오해한다.

지난 2022년 2월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도 마찬가지다. 개전 초 모든 매체가 연일 전황을 보도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도 대략 전쟁이 어떻게 흘러가고 전선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알았다. 그러던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을 탈환한 뒤부터 전선의 움직임은 급격히 둔화했다. 결국 바후무트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전이 재현되기에 이르렀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같은 바흐무트의 참호 모습. 전선이 정체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정작 전쟁 당사자의 피해는 이때를 기점으로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쟁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홈페이지

마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같은 바흐무트의 참호 모습. 전선이 정체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정작 전쟁 당사자의 피해는 이때를 기점으로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쟁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홈페이지

그렇게 움직임이 멈추자 세계인의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 와서는 보도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의 사례들처럼 더욱 잔인하게 치러지는 중이다. 지난 12월 2일, 푸틴이 하달한 두 번째로 증원 명령이 증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전쟁은 밖에서 보는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때 더욱 무서워진다. 전선이 멈춘 것과 전혀 다른 전쟁의 역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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