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진의 기억] 사진으로 쓴 ‘열하일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9호 31면

‘사진가와 열하일기’- 달밤의 고북구장성. 2017년. ©박하선

‘사진가와 열하일기’- 달밤의 고북구장성. 2017년. ©박하선

‘장성에 이름을 쓰려고, 칼을 뽑아 벽돌 위의 짙은 이끼를 긁어내고 붓과 벼루를 주머니에서 꺼내 성 밑에 벌여놓고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물을 얻을 수 없었다. 성안에서 잠시 술을 마실 때 몇 잔을 남겨서 안장에 매달아 밤샐 것을 준비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모두 쏟아 밝은 별빛 아래에서 먹을 갈고, 찬 이슬에 붓을 적셔 여남은 글자를 썼다. -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에 조선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

사진은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이 달밤에 성벽을 넘으며, 솟구치는 감회를 누를 길 없어 술로 먹을 갈아 글을 남겼던 고북구장성의 모습이다. 오랜 세월에 성벽에 쓴 글씨는 사라졌지만, 명저 『열하일기』와 함께 연암의 행적을 간직한 고북구장성은 지금도 달빛 아래 형형하다.

240년 전 열하를 향하던 당시에 연암의 손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호곡장(好哭場)이니 크게 한 번 울어볼 만하다’ 한 요동벌판의 광활함을 응당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기이하고 우뚝 솟아난 이 산의 형세를 무어라 형용키 어렵다’ 한 봉황산의 형용을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사진가 박하선이 지난 2008년부터 10년여 동안 ‘열하일기’의 행로를 사진으로 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압록강 건너 만주 지역 일대와 요동벌판, 그리고 당시 연경이라 불렀던 북경 일대와 사신단인 연암 일행의 최종 목적지였던 열하(지금의 승덕)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톺아가면서 기록한 것이다.

지금껏 여러 사진가들이 시도했으나 성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는데, 오랜 오지 취재의 경험을 지닌 데다 실체를 찾기 어려운 우리 고대사부터 근대사까지를 사진으로 추적함으로써 ‘집념의 사진가’로 불리는 박하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접근이 어려워 한 번도 제대로 기록된 적 없던 티베트 고원의 장례의식을 담은 사진으로 2001년 월드프레스포토상을 수상한 ‘천장(天葬)’의 사진가가 아닌가.

“당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그 열하의 행로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현대의 언어이자 나의 언어인 사진으로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우리에겐 18세기에 연암이 글로 쓴 열하일기가 있고, 21세기에 박하선이 사진으로 쓴 열하일기가 있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