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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사단장 고소’ 생존 병사 “해병대 그만 우습게 만들라”

중앙일보

입력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과 함께 물에 떠내려갔다가 구조된 생존 병사 A씨가 당시 지휘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해 “지휘권을 우습게 만들고, 적을 이롭게 만드는 것은 임 전 사단장”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7월 국립대전현충원 장병묘역에서 엄수된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에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이 참석한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7월 국립대전현충원 장병묘역에서 엄수된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에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이 참석한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자신을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를 겪은 뒤 10월 24일 만기 전역한 예비역이라고 소개한 A씨는 14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잊어보려고 노력해도 여전히 사고 당일의 기억이 떠오른다”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까스로 구조됐던 저는 땅을 밟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하류 쪽으로 뛰어갔다”고 운을 뗐다.

그는 “현충원으로 수근이를 만나러 가려다가도 용기가 나지 않아 중간에 발을 돌린 날도 있었다”며 “대원 모두 평범하게 남들처럼 군 복무를 했을 뿐인데 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서로를 기억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앞서 A씨는 전역한 뒤 임 전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했다.

A씨는 “명목상 임 전 사단장에게 제가 겪고 있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의 피해에 대해 업무상과실의 책임을 묻고자 고소를 한 것이지만, 제가 정말 바랐던 것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해병대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구의 압력으로 안전장비 하나 없이 물에 들어가는 무리한 수색이 진행된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수근이의 목숨을 앗아간 그 황당한 지시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고, 숨기고,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해병대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걸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A씨는 “그런데 사단장은 진술서에서 저를 맹비난했다”며 “제가 수근이의 고귀한 희생을 폄훼하는 명예훼손을 했다고 써놨다”고 지적했다.

임 전 사단장은 채 상병 사고를 조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관련 재판에서 자신은 ‘물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188쪽 분량의 진술서를 중앙군사법원에 제출했다.

A씨는 “(나는) 우리의 피땀을 왜 사단장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엉뚱한 방법으로 동원하다가 소중한 전우를 잃게 만들었는지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사고가 난 날은 사단장이 시찰하러 온다고 다들 긴장해있었던 날”이라며 “그런 날 대놓고 사단장의 명령을 어기고 무리하고 위험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대대장이 존재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A씨는 “제가 자신을 고소한 것이 국민을 선동하고, 지휘권을 와해시키는 이적행위이고 북한의 사이버 공격의 한 형태라던데, 제가 북한의 지령이라도 받고 일부러 사단장을 고소한 것이냐”며 “지휘권을 우습게 만들고, 군인의 사기를 떨어뜨리며,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임 전 사단장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A씨는 “이 사람이 제가 사랑했던 해병대를 그만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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