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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당신 말 동의 안해" 바이든의 속내…美∙이스라엘 균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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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무차별 폭격(indiscriminate bombing)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고 발언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내년 대선 캠페인을 위한 민주당의 모금 행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섬멸 작전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우려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를 그의 별명인 비비(Bibi)로 부르면서 “그를 50년 동안 알고 지내왔지만, 그때부터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당신의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고 말하곤 해왔다. 지금도 그렇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스라엘의 극우 성향 이타마르 벤 그비르 안보장관을 지목해 “아다시피 이번 이스라엘 정부는 역대 가장 보수적”이라면서 “그들은 ‘두 국가 해법(이·팔레스타인 공존)’을 원하지 않고, 이게 네타냐후 총리가 움직이는 걸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가 정부와 함께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안보는 미국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또한 유럽이나 다른 세계와도 연결돼 있다”면서 “그러나 이스라엘은 무차별 폭격으로 이들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라고도 했다.

美여론 의식 바이든, 대선 모금 행사서 ‘작심 비판’

이달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전차가 가자지구 접경 지대에서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달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전차가 가자지구 접경 지대에서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의 이번 발언은 앞서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과 전쟁 이후에 대해선 입장이 다르다”고 밝힌 뒤 나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 구출 작전 등은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하마스 작전 이후’에 대한 이견이 있다”면서 “미래 가자지구는 하마스의 공간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공간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과거 오슬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합의에 도달하길 바란다”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언급한 ‘오슬로의 실수’는 미국의 중재로 두 국가 해법을 확립한 1993년 오슬로 협정을 말한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그의 발언을 X(옛 트위터)에도 올렸다.

그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운동 모금 행사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속내를 털어놓은 건, 국내의 정치 상황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두 개의 전쟁’을 미국이 떠안으려 한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있다.

최근 미 CBS의 여론조사 결과 미 유권자의 61%가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지지한다”는 39%에 그쳤다. 공화당 지지자들보단 민주당 지지층이, 특히 젊은 세대나 다양한 인종·종교적 배경의 유권자들이 이스라엘 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부담이 되고 있다. 내년 대선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경제 상황에 전쟁 장기화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하마스의 기습 사태 이후 미·이스라엘이 양측 간 불협화음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간간히 언론을 통해 “미국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등의 내용이 보도됐을 뿐, 미국은 공개적으론 이스라엘의 하마스 섬멸에 힘을 실어줬다.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휴전 결의안을 거부해왔고,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에도 “하마스를 제거할 때까지 군사 지원을 계속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랬던 양측 정상이 이례적으로 다름을 인정한 셈이다.

FT “美, 지상전 연내 종결 압박“…터널엔 해수 투입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0일(현지시간) 주간 각료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0일(현지시간) 주간 각료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같은 날 유엔 총회에선 이스라엘 전쟁의 “즉각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정전(ceasefire)”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총 153개 회원국 가운데 120개국이 찬성했다. 미국을 포함한 10개국이 반대하고 23개국은 기권했다. 다수의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인질로 납치했던 하마스의 10월 새벽 기습에 대해 책임을 묻는 표현은 빠졌다.

이번 결의안은 지난 10월 총회에서 채택된 “지속적인 휴전(truce)” 결의안보다 강도 높은 표현이 들어갔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는 “유엔 체제에서 휴전은 구속력이 없는 상태로, 정전보다 낮은 강도를 표현하는 용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여론 악화를 의식해 “이스라엘에 지상전을 연내 마무리하라”고 사실상 압박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이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복수의 미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은 현재 가자 남부 칸유니스 등을 집중 공략하고 있지만, 내달부터는 지상 작전이 아닌 하마스의 고위급·주요 목표물을 타깃으로 하는 공습 작전으로 전술을 전환하기를 미국은 기대한다”고 전했다.

미국이 지난 10월 말 시작된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지상전이 해를 넘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의미다. 백악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을 곧 이스라엘에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이 같은 ‘전술 변화’를 설리번 보좌관이 요청할 걸로 보인다고 FT는 덧붙였다.

가장 강력한 우군인 미국이 돌아서면, 이스라엘로서는 전쟁 수행의 동력을 잃을 지 모른다. 현재 이스라엘은 작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지하 터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바닷물을 투입하는 작전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지난달 가자지구 북부에 설치했던 5개의 해수 펌프를 2개 더 늘렸고, 일부 터널엔 이미 해수 투입을 시작했다. ‘가자 지하철(Gaza metro)’이라고도 불리는 하마스의 터널 네트워크가 워낙 방대해, 이를 일일이 확인하고 파괴하는 대신 침수시키는 게 더 빠르다고 IDF가 판단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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