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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외국정상 처음 ASML '클린룸' 방문…1조원 R&D센터 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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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이틀째인 12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 내 클린룸(Clean Room)을 방문했다. 또 이를 계기로 양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ASML이 1조원가량을 공동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R&D(연구개발) 센터'를 한국에 건립하기로 하는 등 양국 관계를 ‘반도체 동맹’으로 격상시켰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의 안내로 ASML 본사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반도체 공급망과 기술혁신 분야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ASML 방문은 해외 순방에서 윤 대통령의 첫 기업 방문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담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함께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담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함께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덜란드 남동부 벨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 방문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기업인도 함께했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이다. 노광 공정은 미세하고 복잡한 전자회로를 반도체 웨이퍼에 그려넣는 기술로, EUV 노광 장비를 활용하면 짧은 파장으로 세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다. ASML이 독점 공급하는 EUV 노광 장비는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꼭 필요하지만 1년에 40대가량밖에 생산하지 않아 기업들은 이 장비를 공급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ASML이 ‘수퍼 을’이라 불리는 이유다.

특히 윤 대통령이 ASML 내 미세먼지와 세균을 제거한 작업실인 클린룸을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클린룸이 외국 정상에게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으로, 클린룸에서는 현재 2nm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투입되는 차세대 EUV 장비가 제조되고 있다. 최고 수준의 보안을 요하는 자국의 반도체 핵심 시설을 윤 대통령 일행에게 공개한 것은 한국을 반도체 기술 동맹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게 대통령실의 해석이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ASML과 한국 반도체 기업들과의 깊은 신뢰 관계와 전략적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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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에 따르면 ASML 본사를 찾은 윤 대통령은 먼저 빌렘-알렉산더르 국왕과 함께 기념 문구가 새겨진 웨이퍼(반도체 재료) 위에 서명하고 이를 클린룸에 전시했다. 대통령실은 “양국 간 반도체 동맹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국 정상 주재로 주요 반도체 기업의 대표가 참여하는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가 진행됐다. 한국 측은 이재용·최태원 회장이, 네덜란드 측은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원자층 증착 장비를 생산하는 ASM의 벤자민 로 CEO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ASML 방문이 한국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동맹이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반도체 산업의 혁신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해 양국 기업이 긴밀히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양국은 정상 참석하에 MOU(양해각서) 서명식을 했다. 먼저 정부 차원의 ‘한-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신설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아카데미가 신설되면 한국의 반도체 관련 학생들과 재직자들이 ASML 본사는 물론 에인트호번 공대가 제공하는 교육 기회를 얻게 돼 EUV 등 첨단 장비 운영 노하우 및 관련 기술 개발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측에서는 KAIST, 울산 UNIST, 성균관대 등 3개 반도체특성화 대학원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참여하고, 네덜란드 측에서는 에인트호번 공대, ASML, ASM, NXP 등이 참여한다. 첫 교육은 내년 2월 네덜란드에서 1주간 진행되며, 양국에서 선발된 석·박사급 대학원생 및 엔지니어 50명씩 총 100명이 참가한다. 교육생들은 에인트호번 공대에서 반도체 석학의 첨단 반도체 공정기술 특강을 수강하고, 업계 난제를 해결하는 ‘반도체 솔버튼’에 참여한다. ASML, NXP 등 기업 현장에서의 실무 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담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의장대를 사열한 뒤 교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담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의장대를 사열한 뒤 교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울러 ASML은 삼성전자와 내년부터 약 1조원을 공동 투자해 초미세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개발하는 R&D센터(연구팹)를 국내에 건립하는 내용의 MOU를 맺었다. 박 수석은 “ASML이 반도체 제조 기업과 해외에 최초로 설립하는 R&D 센터로서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며 “정부는 설치부터 운영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ASML은 2025년까지 총 240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화성에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인 '뉴 캠퍼스'도 짓는다.

ASML은 SK하이닉스와도 EUV를 친환경적으로 활용해 에너지 소모량을 감축할 수 있는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박 수석은 이를 통해 “전력 사용량은 20% 줄어들고, 연간 165억원의 비용이 감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ASML 방문에 앞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빌럼-알렉산더르 국왕 부부가 주관하는 공식 환영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빌럼-알렉산더르 국왕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했으며, 네덜란드 측은 외국 정상에 대한 최고 예우의 의미로 예포 21발을 발사했다. 윤 대통령 부부와 국왕 부부는 이어 네덜란드 한글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 환영단에 다가가 인사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왕궁 리셉션에 이어 전쟁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왕궁으로 이동해 국왕 부부와 오찬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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