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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총선용 ‘직방금지법’ 우려, 또 혁신 죽이기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로톡 직방 삼쩜삼 고소 고발 / 혁신 골든타임 놓치는 리결테크/ 제의 2타다 사태/ 일러스트: 중앙선데이국 김이랑

로톡 직방 삼쩜삼 고소 고발 / 혁신 골든타임 놓치는 리결테크/ 제의 2타다 사태/ 일러스트: 중앙선데이국 김이랑

부동산 혁신 기업 압박할 ‘제2의 타다금지법’

50만 공인중개사 몰표 노린 포퓰리즘 중단을

의사·변호사 등 직역 단체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은 임의단체인 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격상하고, 협회에 윤리 의무를 위반한 회원 제재권과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단속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21일 개정안을 심의·의결한다고 한다.

이 법안이 문제인 건 소비자 편익을 늘리는 부동산 스타트업(프롭테크·Property Technology)의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어서다. 권한이 세진 협회가 기존 요율보다 낮게 중개수수료를 책정한 직방·다방·호갱노노 등 프롭테크와 이와 연계된 공인중개사를 제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소비자가 원하는 프롭테크의 서비스를 협회가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라는 이유로 단속할 수 있다. 지금도 협회가 프롭테크 기업과 수수료 갈등을 벌이고 있는 만큼 법안이 ‘직방금지법’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협회는 2019년 자체 플랫폼이 아닌 직방 등 다른 플랫폼에서 회원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았다.

특히 소관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반대에도 법안을 추진하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국토부는 “전세사기 등으로 상당수 공인중개사들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아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법정단체화에 반대했다. 올해 국토부의 두 차례 특별점검 결과,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880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지난 1년2개월간 잠자고 있던 법안을 민주당이 갑자기 꺼내 서두르는 이유는 내년 4·10 총선 때문일 것이다. 11만 명의 개업 공인중개사와 52만 명의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의 몰표를 노린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힘든 무리한 입법이다. 21대 총선 직전에 택시업계의 기득권을 위해 2020년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 ‘타다금지법’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전문가 단체의 직역 이기주의로 소비자 이익이 훼손되고 혁신 기업들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소멸되는 사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변협은 리걸테크인 ‘로톡’을, 의사협회와 약사회는 원격진료 스타트업을, 세무사회는 세금환급 서비스 ‘삼쩜삼’을 압박하고 틈만 나면 발목을 잡아 왔다. 그렇게 하다 우리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우버 없는 나라’가 됐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존 사업자들의 강고한 기득권을 견제하고 신규 혁신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며 이에 따른 갈등을 적극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혁신경제가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표만 노려 나라의 미래엔 눈감으며 정반대의 길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