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걸 올때마다 돈주냐" 젤렌스키에 사나워진 워싱턴...푸틴 웃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를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를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두 번째 겨울’로 접어든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처했다. 11일(현지시간) 그는 미국의 군사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세 번째 방미길에 올랐지만, 전쟁 장기화로 미국ㆍ유럽 등 서방 동맹국들은 물론 우크라이나 내부 역시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자국민 80%의 지지 속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대조적이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이 배석한 워싱턴의 미 국방대 연설에서 “미 의회의 난맥상을 보며 고무될 사람은 푸틴이며, (지원금이)지연되는 것을 보는 것은 그들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세계가 주저할 때가 러시아 독재 정권은 이를 축하할 것”이라고도 했다.

젤렌스키의 이번 방문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예산 614억 달러(약 80조 7200억원)가 미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 하면서 이뤄졌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연내 바닥날 것으로 보이지만,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대신 미국의 국경 관리 예산을 강화하라”며 예산 통과를 미루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설득에 나섰지만, 우크라이나 지원금을 포함한 1050억 달러 상당의 긴급 예산은 지난 6일 상원에서 부결됐다.

젤렌스키의 호소에도 미 정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공화당의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상원의원(39·오하이오)은 “돈을 달라고 미국에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every beggar)에게 오기만 하면 다 줘야 하느냐”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우리는 이 전쟁의 끝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일부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미치 매코널(81·켄터키)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도 취재진을 만나 “미국의 안전을 위해 국경 보안이 1순위”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하원의 마이크 존슨(51·공화·루이지애나) 의장과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를 비공개 면담하고, 같은 날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한다.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동안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오른쪽)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동안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오른쪽)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같은 워싱턴의 분위기는 그가 1년 전 워싱턴을 찾았을 때와는 대조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발발 이후 작년 12월과 올해 9월 미국을 찾았다. 그가 작년 12월 21일 처음 미 국회의사당을 찾아 연설했을 땐 의원들의 열렬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당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과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받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함께 들어보이기도 했다.

분위기가 바뀐 배경엔 1년 새 하원이 공화당 주도로 넘어가는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 그리고 지난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영향 등이 꼽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 전쟁을 지원하는 데 대한 미국 대중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발표된 FT와 미 미시간대 조사에서 미 유권자의 48%는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이 과도하다”고 응답했다. “적절하다”는 27%, “부족하다”는 11%에 그쳤다.

유럽도 우크라 지원 불투명

러시아군 포격을 위해 엄폐한 우크라이나 아우디이우카 경찰. AP=연합뉴스

러시아군 포격을 위해 엄폐한 우크라이나 아우디이우카 경찰. AP=연합뉴스

설상가상 유럽의 지원도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언 EU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면 500억 유로(약 70조 8000억원)가 필요하다”며 회원국 간 공동 예산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는 오는 14·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었지만, 회담 전부터 헝가리 등이 지원에 난색을 보이면서 타결이 어려운 상황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한 최근 네덜란드 총선 결과 극우 성향 정당이 승리한 데 이어 독일도 내부적으로 예산 파행 문제를 겪고 있다. 이들 국가의 상황 변화를 언급하면서 FT는 "EU 정상들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같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짚었다. 매체는  “각 EU 회원국들이 예산을 각출하기보다 유럽 내 제재로 동결한 러시아 자산 약 15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 지원금으로 전용하자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암울한 젤렌스키, 웃는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젤렌스키를 향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이달 초 독일 주간지 슈피겔 등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점점 고립돼 가고 있으며, 독재자가 되고 있다”면서 “결국 실각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클리치코 시장은 “어느 시점에서 우크라이나는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변덕에 달린 러시아와 더는 다르지 않아졌다”라고도 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계엄 상황에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당초 내년 3월로 예정돼 있던 우크라이나 대선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와 불화를 겪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나오고 있다. 잘루즈니는 ‘철의 장군’이란 별명을 가진 인물로, 대중적인 호감도가 높은 인물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실시한 우크라이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11월 기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32%로, 잘루즈니(70%) 장군이나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정보국장(45%)보다도 낮았다.

한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일 ‘조국 영웅의 날’ 기념 행사장에서 내년 3월 대선 출마를 발표했다. 국영매체들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한 군인이 “국가를 위해 출마해달라”고 청했고, 푸틴이 이를 수락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당신 말에 따라 지금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이고, 나는 연방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푸틴에 대한 러시아 유권자들의 신뢰도는 78.5%로 조사됐다고 러시아 매체들은 전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