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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주기 맞은 12·12 반란…"참군인 김오랑·정선엽 기억" 추모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신군부 반란군과 전투하다 전사한 정선엽 병장의 누나인 정영임(74·우), 정정자(79·좌) 씨가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고 정선엽 병장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신군부 반란군과 전투하다 전사한 정선엽 병장의 누나인 정영임(74·우), 정정자(79·좌) 씨가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고 정선엽 병장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친구도 많고 착한 아이였어요. 44년이 지났는데도 선엽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요.”

12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8번 묘역. 고(故) 정선엽 병장(당시 23세)의 작은 누나 정영임(74)씨는 동생의 묘비를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삼켰다.

정 병장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본부 지하벙커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박 병장의 매형 박종성(75)씨는 “‘처남이 부상을 크게 당했다’길래 영문도 모른 채 병원에 갔는데, 이미 영안실로 안치된 뒤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박씨는 “세월이 가면 역사가 증명해줄 거라고 믿었는데, 선엽이의 죽음을 모두가 인정해준 걸 보니 진짜 증명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12·12 군사반란 44주기를 맞아 서울현충원에서 ‘참군인 김오랑 추모기념사업회’ 주최로 합동 추모식이 열렸다. 정 병장을 비롯해 당시 반란군에 맞섰다가 숨진 김오랑 중령 등을 기억하자는 취지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도 흥행하면서 유족들 외에 일반 추모객들도 이날 추모식 현장을 찾았다. 반포고 2학년 유모(17) 군은 “상관을 지키다 의롭게 죽은 김 중령을 기억하고 싶어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왔다”며 “국방 관련 진로를 꿈꾸고 있는데 꿈이 더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와 전투에서 전사한 김오랑 중령의 서울 현충원 묘비 앞에서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관계자들과 시민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 이영근 기자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와 전투에서 전사한 김오랑 중령의 서울 현충원 묘비 앞에서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관계자들과 시민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 이영근 기자

김오랑 중령은 영화 속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이다. 서울 송파구 특수전사령부에서 정병주 사령관을 호위하다 반란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김 중령은 1990년 소령에서 중령으로 추서되고, 2014년 보국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방부 재심을 거쳐 업무 중 사망한 ‘순직’에서 교전 중 사망한 ‘전사’로 사망구분이 변경됐다.

정 병장도 같은 달 전사가 인정됐다. 12·12로 불행한 운명을 맞이한 군인들의 명예회복 운동을 20년 동안 이끈 김준철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사무처장은 “죽음을 불사하고 자기 자리를 지킨 참군인들이 재조명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김 중령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육군 소장)은 현충원 장군제1묘역에 묻혀 있다. 그는 12·12 직후 강제예편 당한 뒤 1989년 경기도의 한 야산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서울 현충원 장군묘역에 있는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의 묘비. 비석에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다. 사진 이영근 기자

서울 현충원 장군묘역에 있는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의 묘비. 비석에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다. 사진 이영근 기자

김오랑 중령과 정선엽 병장의 고향인 경남 김해와 전남 영암에서도 44주기 추모식이 잇따라 열렸다. 김해 삼정초등학교 인근 김 중령의 흉상 앞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150여명의 추모객이 모였다. 영암 영암공원 현충탑에서는 정 병장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정 병장의 모교 조선대는 13일 유족들에게 명예 졸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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