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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행복해지고 싶어” 가면이 드러내는 마음, 예나 지금이나 같죠

중앙일보

입력

얼굴의 일부 또는 전체나 머리를 전부 덮어 가리는 물건, 바로 가면입니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가면을 착용했다고 추정되는데요. 가면을 쓰면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고, 가면의 주인공 모습으로 꾸밀 수도 있죠. 이런 점을 이용해 가면을 쓰고 사냥에 나가고, 종교적·주술적 의식을 치르고, 예술·예능을 펼쳤으며, 신분을 숨기거나 위험을 방어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어요. 오랜 세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썼던 가면. 과거부터 현대적 의미까지 가면의 가면을 벗겨봤습니다.

가면은 영어로 마스크(mask)라고 하죠. 마스크 하면 흔히 올 3월 코로나19 방역수칙이 완화돼 실내 착용 의무가 해제되기까지 약 3년간 얼굴의 일부처럼 썼던 보건 마스크를 떠올릴 텐데요. 방역을 비롯해 방독·방진·방한용 마스크, 펜싱·검도 등 스포츠의 방호용 마스크, 화장용 마스크, 장례용 마스크, 햇빛 차단 및 얼굴 보호용 등 다양한 용도의 마스크가 현재에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MASK: 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 전시를 통해 가면의 의미와 가면극의 역할을 살핀 소중 학생기자단. 왼쪽부터 말뚝이 가면을 든 명운서(서울 구암초 5)·완보 가면을 든 정아인(서울 영훈초 6)·취발이 가면을 든 박규리(서울 위례별초 5) 학생기자.

국립민속박물관 ‘MASK: 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 전시를 통해 가면의 의미와 가면극의 역할을 살핀 소중 학생기자단. 왼쪽부터 말뚝이 가면을 든 명운서(서울 구암초 5)·완보 가면을 든 정아인(서울 영훈초 6)·취발이 가면을 든 박규리(서울 위례별초 5) 학생기자.

흔히 가면 하면 떠올리는 형태로 의미를 좁혀 보면 변장·분장 등을 목적으로 연극·무용·무도회·카니발 등에 사용되는 것인데요. 이와 관련해선 매년 1월 말~2월쯤 시작해 사순절 전날까지 10여 일간 화려한 가면과 복장을 갖추고 즐기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원시시대 수렵이나 주술적 목적으로 썼던 가면은 차차 제례나 장례,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졌으며,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연극에 사용됐어요.

옛사람들은 가면극을 통해 속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가면을 쓰면 맨얼굴로는 할 수 없는 말도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실제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었거든요. 가면을 쓰는 마음, 가면극에 담긴 바람을 살펴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우리나라와 이웃인 중국·일본을 더해 동아시아 삼국의 가면 이야기를 담은 전시 ‘MASK: 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이 열리는 곳이죠.

중국의 고전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가운데 위)와 그의 세 제자 손오공(가운데 아래)·저팔계·사오정 가면.

중국의 고전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가운데 위)와 그의 세 제자 손오공(가운데 아래)·저팔계·사오정 가면.

전시에선 하회별신굿보존회의 하회탈을 비롯해, 귀주성 나당희 가면, 빗추가구라 가면 등 한·중·일 삼국의 가면 220여 점을 볼 수 있어요. 전시장 입구는 우리나라 경상도 지역 가면극인 야류(野遊) 중 동래야류의 말뚝이 탈을 캐릭터로 꾸며 장식했습니다. 귀여워 보이는 말뚝이와 함께 전시를 기획한 오아란 학예연구사가 명운서·박규리·정아인 학생기자를 맞이했어요.

옛날부터 이어져온 가면

가면은 우리말로 탈이라고 하며, 가면극은 흔히 탈놀이라고 일컫는데요. 놀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가면극은 현실의 고난을 잊고 일상의 고통을 치유하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오 학예사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가면극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형태가 정립됐다”며 “지역별로 가면과 가면극의 이름·종류 등이 다양한데, 공통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세 가지 있다”고 소개했어요. 바로 지배층인 양반과 서민층 대표인 말뚝이가 대립하는 이야기, 파계승인 노장과 이를 혼내주는 취발이 이야기, 가부장제 사회에서 영감과 갈등하는 할미 이야기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먼저 양반과 말뚝이를 만났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은 정치·경제·문화적 특권을 독점한 사회적 강자다 보니, 사회적 약자가 영웅으로 등장해 이들의 부패와 비리를 고발하는 풍자극이 발달했죠. 여러 양반 가면들은 하나같이 작고 못생기고 얼굴색도 칙칙하고 눈·코·입이 삐뚤어졌거나 털이 잔뜩 났거나 병에 걸렸거나 한 모습이에요.

동래야류에 등장하는 말뚝이 가면. 말뚝이는 양반에게 복종하는 척하면서 약점을 폭로하고 양반의 위선을 풍자한다. 국립민속박물관

동래야류에 등장하는 말뚝이 가면. 말뚝이는 양반에게 복종하는 척하면서 약점을 폭로하고 양반의 위선을 풍자한다. 국립민속박물관

반면 말뚝이는 종이나 다름없는 위치로 사회적 약자지만, 크고 강인한 얼굴로 표현되죠. 오 학예사는 말뚝이 가면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했어요. “다 다르게 생겼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일단 코가 참 크죠. 이는 힘이 센 것을 뜻해요. 빨간 얼굴은 귀신을 쫓는 벽사의 의미가 있죠. 혹 같은 것도 병이 아니라 강함을 표현한 거예요. 말뚝이 가면을 막 보면 무섭죠? 보고 두려워하라는 거죠. 서민들을 대표하는 말뚝이는 극 중에서 양반 계급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실체를 폭로하며 사회적 모순을 고발했어요. 그렇게 대리만족을 주다 보니 인기가 많았죠.”

다음으로 노장과 취발이를 살펴봤습니다. “노장은 원래 불교에서 오래 불도를 닦아 나이 많고 덕이 높은 노승이에요. 종교계 정점에 있는 인물이지만 가면극에선 타락한 파계승으로 표현돼 노장 가면을 보면 시커멓고 음흉하죠. 이를 혼내주는 취발이는 말뚝이처럼 서민을 상징하며, 붉은 얼굴에 주름이 여럿 잡혔고 긴 머리카락으로 젊음과 힘을 표현했어요.” 설명을 들으며 가면을 살펴보던 운서 학생기자가 질문했죠. “뒤에 커다란 가면은 뭔가요?” “사자 가면이에요. 불교와 함께 들어온 사자 역시 파계승을 혼내는 역할입니다. 가면이 꽤 큰데, 얼굴에 쓰는 게 아니고 들고 연기했어요.”

봉산탈춤 ‘제4과장 노장춤’의 제3경 취발이춤에 등장하는 취발이(사진 오른쪽) 가면과 마당이. 노장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취발이는 소무와 아들 마당이를 낳고 글을 가르쳐 입신양명을 바란다. 국립민속박물관

봉산탈춤 ‘제4과장 노장춤’의 제3경 취발이춤에 등장하는 취발이(사진 오른쪽) 가면과 마당이. 노장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취발이는 소무와 아들 마당이를 낳고 글을 가르쳐 입신양명을 바란다. 국립민속박물관

사자에 원숭이까지 강렬한 가면들을 지나자 축 처진 눈에 점이 가득하고 세월에 찌든 듯 불쌍해 보이는 가면이 나타났습니다. 할미 가면이죠. 반면 영감 가면은 꽤 정상적인 얼굴로 표현됐어요. “할미는 조강지처지만 영감에게 구박받고 핍박받고 배신당해요. 부당한 부부 관계에서 할미는 대항하죠. 일부 가면극에선 할미가 재산 분할 등 여러 요구도 하는데, 당시 강력한 가부장제 현실선 이뤄질 수 없는 거였죠.”

송파산대놀이·양주별산대놀이·오광대·야류·봉산탈춤·해서탈춤 등 다양한 가면극에서 양반은 말뚝이에게 비판받고 노장은 취발이에게 골탕 먹는 등 강자의 경우 빌런 취급을 받으며 약자에게 시종일관 당하지만, 마지막에는 모두가 한바탕 춤추며 퇴장합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바란 이상적인 사회를 보여줘요. 즉, 모두 함께 잘사는 사회를 꿈꾼 겁니다.

경남 고성지역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인 고성오광대에 등장하는 양반 가면들. 다른 가면극에 비해 양반 가면 수는 많지만 한국 가면 특유의 풍자성은 약한 편이다.

경남 고성지역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인 고성오광대에 등장하는 양반 가면들. 다른 가면극에 비해 양반 가면 수는 많지만 한국 가면 특유의 풍자성은 약한 편이다.

“한국 가면극에선 풍자를 위해 과장되고 익살스럽게 표현된 가면을 쓰고 평범한 사람들의 설움과 한을 보여주고, 권력층에 불만을 쏟고, 사회적 통념을 뒤집으며 사회 비판적 저항의 메시지를 주지만 파국을 맞는 게 아니라 화해하고 함께 어우러지죠. 가면을 벗은 뒤엔 말 그대로 놀이판이 돼 관객들까지 한데 어울려 신명 나게 놀았어요. 다 끝난 뒤엔 탈소제라고 해서 가면을 태우며 나쁜 기운도 없애고 가슴속 응어리까지 함께 태웠죠. 삶의 힘든 부분을 해소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어요. 이게 한국 가면극의 특징입니다.”

우리네 삶이 진하게 녹아난 한국 가면·가면극과는 달리 중국의 경우 영웅 이야기를 주로 다룹니다. 중국 가면극은 나희라고 하는데, 지역과 민족에 따라 나당희·지희·관색희·사공희 등 명칭부터 가면 종류와 형태, 극의 내용도 다채롭죠. 역사나 소설, 민간 전설이나 신화, 민족의 시조·조상,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의 영웅이 나타나는 게 공통점이에요. “영웅을 닮고 싶고 본받고 싶은 마음, 평범한 나도 저런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담았죠.”

‘MASK: 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 전시를 기획한 오아란(맨 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중국 가면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MASK: 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 전시를 기획한 오아란(맨 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중국 가면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귀주성 동인지구 덕강현 나당희에서 가면은 신이자 영웅입니다. 병이 나거나 재난을 당하는 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신을 부르고 소원을 비는 행위 자체가 가면극이 됐죠. 이야기에 등장하는 24신(가면)은 도원삼동에 갇혀있으며, 이를 모셔오는 것으로 극이 시작해요. 24신을 하나하나 청하면 신은 사람을 위해 흉악을 물리치고 재앙을 소멸시켜 길함을 불러들이고 복을 주죠. “24신 가면을 보면 단정하고 인자하게 생긴 신이 있는 반면 사납고 무섭게 생긴 흉신도 있는데요. 모두 사람을 도우며 신앙의 대상입니다.”

고전 소설인 봉신방·서유기·삼국연의 가면도 흥미로웠습니다. “소설 주인공 가면은 인물의 외양을 표현한 그대로 만들었어요. 관우 가면을 보면 삼국지에 나온 붉은 대춧빛 얼굴에 봉의 눈, 누에 눈썹, 길고 아름다운 수염 등의 묘사를 따랐죠.” 민간 전설을 소재로 평범한 사람들도 가면극에 들어갔어요. ‘안안송미’에 사용한 가면을 보던 규리학생기자가 안안 가면을 가리키며 “효자 가면이라 그런지 귀엽고 잘생겼어요”라고 했죠. 오 학예사는 “안안은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로, 그를 닮고 본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라며 “안안의 머리를 보면 동그랗게 모양을 꾸몄죠. 다른 가면들도 보면 모자나 투구, 머리 모양과 장식, 뿔 등을 다 정성껏 만들었는데, 이게 중국 가면의 특징”이라고 덧붙였죠.

중국 귀주성 안순 지희의 관우 가면.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것처럼 붉은 얼굴에 긴 수염, 봉황의 눈, 누에 같은 눈썹을 하고 있다. 관우는 유비를 도와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민간에서는 충의, 의리의 상징이자 벽사의 신, 재물의 신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중국 귀주성 안순 지희의 관우 가면.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것처럼 붉은 얼굴에 긴 수염, 봉황의 눈, 누에 같은 눈썹을 하고 있다. 관우는 유비를 도와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민간에서는 충의, 의리의 상징이자 벽사의 신, 재물의 신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일본의 가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 전시됐어요. 신사를 중심으로 한 가구라, 귀족 예능으로 계승된 노입니다. 일본 각지에서 전승되는 수많은 가구라는 대부분 농업·어업·수렵 등 생업·생산과 관련된 신에게 올리는 기도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하야치네가구라에서 태풍·해일·화재 등 재난을 막는 곤겐사마, 비파고진가구라의농업신아라가미, 무서운 얼굴로 액을 쫓는 오니 가면 등을 살펴봤어요. 사자 가면 시시가시라를 본 세 사람은 “이게 사자라고요?”“강아지 같아요”라며 한국 사자 가면과 사뭇 다른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이 가면은 말뚝이처럼 코를 강조했는데, 코가 길어요.” 아인 학생기자의 말에 오 학예사가 덴구 가면이라고 알려줬죠. “붉은 얼굴에 긴 코는 하나타카덴구 형태로, 말뚝이처럼 강한 힘과 남성성을 상징해요. 가라스덴구라고 새의 부리와 날개가 달린 조류형도 있죠. 모양에 따라 까마귀부터 봉황·독수리·참매 등으로 해석됩니다. 덴구는 다양한 의미를 지녔는데, 불을 다스리거나 산을 지배하는 등 복신이자 장난을 좋아하는 요괴로도 여겨져요.”

사카키오니 가면. 사카키오니는 하나마쓰리의 주신이자 대지에 새로운 생명력과 활력을 불어넣는 산신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사카키오니 가면. 사카키오니는 하나마쓰리의 주신이자 대지에 새로운 생명력과 활력을 불어넣는 산신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오카야마현 빗추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빗추가구라에는 일본 신화 관련 내용이 들어가 아마테라스·아메노우즈메·스사노오 등 일본 신들의 가면을 볼 수 있어요. “신을 표현한 가면들은 거의 복제품이에요. 가면을 쓰고 신을 흉내 낸 것을 넘어 가면 자체도 신으로 모셔 신사에서 엄중하게 보관하고 가구라 때만 볼 수 있죠.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서도 복제품을 전시해요. 이번 전시를 위해 어렵게 빌려왔죠.”

신을 모시고 인간의 바람을 전하는 가구라와 달리 노의 경우는 무대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칩니다. 오모테라고 부르는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피리·타악기 반주에 가사를 붙인 우타이라는 성악에 맞춰 대사와 춤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죠. 몇 가지 오모테는 무대처럼 꾸며진 곳에 전시돼 실제 노를 관람하는 것처럼 영상과 함께 볼 수 있었어요.

일본 가면극 노의 무대처럼 꾸며진 공간에선 노 영상과 가면을 함께 볼 수 있다.

일본 가면극 노의 무대처럼 꾸며진 공간에선 노 영상과 가면을 함께 볼 수 있다.

“일본 가면은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게 특징이죠. 얼굴이 비슷해 보일 때 사람과 귀신·괴물 가면 구별하는 팁을 알려줄게요. 눈을 잘 보세요.” 오 학예사의 말에 소중 학생기자단이 주조와 이야카시를 비교해 봤습니다. “주조는 젊은 사무라이로 헤이안 시대 귀족 남자 얼굴을 표현했어요. 강한 원한으로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으로 등장하는 이야카시를 보세요. 눈동자 주변이 금색이죠. 이렇게 가면 눈동자에 금속 테두리가 있는지 확인하면 쉽죠. 노 무대에서는 가면을 바꿔 쓰고 나온답니다.”

한국·중국·일본은 서로 다른 가면을 쓰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쳤지만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바람은 꽤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가면극을 통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꿈꿨죠. 잘 먹기 위해 풍년·풍어를 기원하고, 잘살기 위해 질병을 일으키는 액·악귀를 없애길 바랐어요. 1부에서 삼국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특징을 알아본 뒤 2부에선 풍요와 벽사를 바라는 가면을 모아 볼 수 있죠.

1930년대 황해도 봉산 경암루 부근 봉산탈춤 공연장의 목중춤 장면. 국립민속박물관

1930년대 황해도 봉산 경암루 부근 봉산탈춤 공연장의 목중춤 장면. 국립민속박물관

마을의 번창을 기원한 하회별신굿탈놀이 가면을 보던 운서 학생기자가 “최근에 하회탈을 만들었는데, 신문지를 사용했어요. 옛날 사람들은 뭐로 가면을 만들었나요” 질문했습니다. “지금 보는 각시·백정·양반·중 등의 가면은 고려시대에 나무로 만들었어요. 그중 각시는 하회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성황신)을 상징합니다. 신을 표현한 가면이라 태우지 않고 잘 모셨기에 현존하는 우리나라 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가 됐죠. 아까 우리나라에선 탈놀이가 끝나면 탈소제를 해서 다 태운다고 했잖아요. 보통 탈을 만들 땐 잘 타는 바가지·종이 등을 주로 썼고, 중국·일본은 가면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주로 나무를 사용했죠. 이런 재료만 봐도 인식이 다른 걸 알 수 있어요.”

‘벽사의 왕’ 사자 가면은 액과 악을 없애는 벽사의 힘을 가진 존재가 나타나 복을 주는 서사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 북청사자놀이의 사자는 가가호호 방문해 액을 쫓아내는데, 일본 이세다이가구라의 사자, 중국 사자패의 사자와 하는 일이 비슷하죠. 속성은 비슷하지만 생김새는 사뭇 다른데요. 한·중·일 사자를 한곳에서 만난 소중 학생기자단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느 나라 사자인지 바로 맞췄죠. 오 학예사는 “지금 여러분처럼 전시를 보면서 한·중·일 가면의 특징을 알고 차이를 구별해보면 재밌을 것”이라고 관람 팁을 전했죠.

사자는 민간에서 악귀를 내쫓고 마을의 태평과 개인의 행복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사자 가면의 생김새는 각각 다르지만 이러한 역할은 한·중·일 삼국의 가면극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사자는 민간에서 악귀를 내쫓고 마을의 태평과 개인의 행복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사자 가면의 생김새는 각각 다르지만 이러한 역할은 한·중·일 삼국의 가면극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삼국의 가면을 보다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는 미얄할미·맹강녀·가네마키 등 한(恨)이 서린 여인의 얼굴, 초랭이·진동·홋토코 등 웃음기 가득한 익살꾼의 얼굴, 연개소문·시라기오 등 중국·일본에 위용을 떨쳤던 옛 한국인의 얼굴들로 확인했죠. 수많은 가면을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밸런스 게임으로 각자 어울리는 탈도 찾아봤어요. 각자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의 한냐, 어떤 병이라도 없애줄 거라는 일본사자, 효를 통해 가족의 화목을 회복하는 안안 가면을 매칭받은 소중 학생기자단은 가면을 쓰는 의미에 대한 정리를 청하며 “현재는 가면을 쓸 일은 별로 없는데, 옛 가면과 가면극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했죠.

“아이언맨 가면을 쓰면 내가 아이언맨 된 것 같고 그렇잖아요. 옛날부터 가면을 썼던 건 나의 정체를 숨기고 속마음이나 욕망, 바람을 표현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요. 지금은 형태가 있는 가면을 쓰는 일은 별로 없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얼굴을 내보이는 것을 늘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어요. 잘 먹고 잘살고 건강하고 싶은, 탈놀이에 담긴 것과 비슷한 바람은 지금 우리도 갖고 있죠. 행복해지고 싶어서 가면을 썼던 마음을 우리도 잘 아는 만큼 이를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으로 표현한 가면극 또한 계속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한·중·일 삼국의 가면 220여 점을 살펴보고 나오는 길엔 세 나라 사람들이 얼굴의 일부를 가면으로 가리고 솔직한 본심과 소원을 말하는 영상이 흐른다.

한·중·일 삼국의 가면 220여 점을 살펴보고 나오는 길엔 세 나라 사람들이 얼굴의 일부를 가면으로 가리고 솔직한 본심과 소원을 말하는 영상이 흐른다.

현대인의 가면

옛날 제사·연희 등의 도구로 사용됐던 가면은 현재 이모티콘이나 메타버스 등의 AI 캐릭터, SNS 등에서 또 다른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쓰입니다. 이러한 가면을 써야만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은 일상생활에서도 적잖은데요. 집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할 때 등 상황에 따라 매일 다른 가면을 쓰는 것을 두고 흔히 페르소나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마스크, 페르소나에 대한 소중 학생기자단의 궁금증에 전수경 테라피엔스 심리상담연구소 센터장(한양대 겸임교수)이 답을 전해왔습니다.

운서: 페르소나는 현대인의 가면이라고도 불리는데, 언제부터 이처럼 쓰였나요.
페르소나는 무대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분석심리학자인 융(Carl Gustav Jung)이 인간의 정신 현상, 집단정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페르소나’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후 현대 심리학과 문화에 흡수되면서 폭넓게 쓰이는 것 같아요.

연개소문 가면. 중국 귀주성 안순 지희의 가면으로,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무공을 다룬 ‘설인귀동정’에 등장한다. 고구려의 맹장 연개소문의 활약상이 대단했기에, 아직까지도 개소문이 나타났다고 하면 아이들이 무서워 도망간다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연개소문 가면. 중국 귀주성 안순 지희의 가면으로,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무공을 다룬 ‘설인귀동정’에 등장한다. 고구려의 맹장 연개소문의 활약상이 대단했기에, 아직까지도 개소문이 나타났다고 하면 아이들이 무서워 도망간다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규리: 페르소나를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이라고 하던데 제대로 된 정의인가요.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는데, 정의가 좁을 수 있어 좀 더 정확히 설명할게요. 우리는 집단생활이나 타인과의 교류를 피할 수 없는데요. 이때 내면(무의식)이 아닌 외부 세계에 접촉하면서 여러 집단 규범이나 사회적 눈치 등의 경험으로 사람들은 행동양식을 익히게 됩니다. 이렇게 익힌 행동양식으로 나타나는 외적 태도를 ‘페르소나’라고 하죠. 역할·본분·사명·도리 등으로도 바꾸어 말할 수 있어요.

아인: 학교에선 친구들과 집에서는 부모님의 딸로 살아가며 상황에 따라 성격이 다르게 드러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것도 페르소나에 포함되나요.
맞아요. 페르소나는 나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그것이 잘못이거나 오류라고 볼 수 없습니다. 페르소나는 집단의 보편적 규범이기에 어느 집단에는 타당하고 또 어느 집단에는 타당하지 않을 수 있죠.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에 따라 페르소나는 변할 수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하테루마섬의 라이호신 중 미로쿠 가면. 먼 바다에서 내방하는 신 미로쿠는 황금색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는 큰 부채,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부채를 좌우로 흔들며 느긋하게 걸으며 사람들에게 복을 준다. 국립민속박물관

일본 오키나와 하테루마섬의 라이호신 중 미로쿠 가면. 먼 바다에서 내방하는 신 미로쿠는 황금색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는 큰 부채,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부채를 좌우로 흔들며 느긋하게 걸으며 사람들에게 복을 준다. 국립민속박물관

아인: 본래 성격을 드러내지 않으며, 다른 성격을 보이는 것인데 정서적으로 문제는 없나요. 페르소나가 여럿이거나 엄청 유능하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페르소나가 정서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페르소나에 너무 몰입해서 페르소나와 나를 일치시키며 살다 보면 점차 페르소나가 자신인 것처럼 동일시될 수 있는데요. 동일시가 심해지면 자신을 잃고 생활하게 되고 어느 순간 반작용으로 더 이상 페르소나로 사는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우울해질 수 있죠. 페르소나가 여럿인 건 당연히 있을 수 있어요. 다만 페르소나들 사이에 차이가 너무 심하다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죠. 집단마다 바뀌어야 하는 페르소나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면 지치고 번아웃(Burn out)이 올 수 있습니다. 번아웃엔 ‘타서 없어지다, 태워서 못쓰게 한다’는 뜻이 있는데, 자신을 다 태우고 자신의 욕구와 멀어진 여러 페르소나는 분명 문제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심리상담사들은 페르소나끼리 격차가 너무 심하다면 그 차이를 줄여 균형이 잡히도록 상담하기도 합니다.

완보 가면을 든 정아인 학생기자.

완보 가면을 든 정아인 학생기자.

아인: 페르소나는 부캐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페르소나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효과도 궁금해요.
페르소나가 부캐와 완전 일치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페르소나를 형성하는 것은 외부세계에서 내가 취하는 외적 태도고 이 외적 태도를 결정하는 것에는 나의 무의식·경험 등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현대에서 인식되는 페르소나가 미치는 효과는 다양한데, 특히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페르소나입니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집단생활에서 나타나는 페르소나와 다르게 디지털 공간에서의 페르소나는 더 왜곡되고 위장되어 있다고 봐요. 디지털 공간에서 나타나는 조작된 이미지의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발각되기 쉽지 않아 더 극으로 치닫게 됩니다. 내가 전혀 없는 가상의 페르소나, 여기서는 일종의 부캐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과시소비를 불러일으키고 현실세계에서 멀어지게 하며 디지털세계에서 보여주는 타인의 관심·반응에 중독되어 나를 점점 잃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잃지 말고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하죠.

운서: 멀티페르소나라는 말도 나오고, 늘 가면을 쓰고 산다고 생각하니 피곤한데요. 페르소나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페르소나를 형성합니다. 관계 속에서 페르소나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필요하며 꼭 있어야 한다고 봐요. 만약 페르소나가 없다면 우리는 사회역할의 부재로 집단생활을 평화롭고 윤리적이게 이끌 수 없을 겁니다.

규리: 원만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건강한 페르소나는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까요.
페르소나가 자기와 일치하는 ‘본연의 나’는 아니지만, 버려야 할 것은 아니죠. 구별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첫째, 학교·집·또래집단에 맞는 페르소나가 있다면 그 페르소나에 너무 몰입해서 나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일시는 대부분 무의식적 과정이라 반드시 구별하려고 인식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 융통성 있는 페르소나가 필요하죠. 즉, ‘반드시, 꼭 그렇게 행동해야 해’라는 경직성을 버리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융통성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페르소나들의 균형입니다. 극단적인 페르소나의 차이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연상할 수 있겠죠? 페르소나를 타인이 보는 나로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페르소나를 만든다면 균형 잡힌 페르소나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한국의 말뚝이, 중국의 연개소문, 일본의 사카키오니 가면을 쓴 소중 학생기자단이 탈놀이하듯 포즈를 취했다.

한국의 말뚝이, 중국의 연개소문, 일본의 사카키오니 가면을 쓴 소중 학생기자단이 탈놀이하듯 포즈를 취했다.

규리: 페르소나 없이도 잘살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어떠한 페르소나도 없다면(이유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사회와 문화 주변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고립된 삶을 살게 될 수 있습니다. TV 등에 산속에서 혼자 사는 것으로 나오는 자연인과는 달라요. 그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페르소나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모두 심리적·신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페르소나가 전혀 없다면 어떠한 역할·본분·사명감도 없다는 뜻이기에 고립된 삶을 마주하게 될 수 있습니다.

MASK-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


기간: 2024년 3월 3일까지
장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37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종료 1시간 전 입장 마감, 1월 1일·설 당일 휴관)
관람료: 무료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번 취재에서 여러 종류의 가면을 볼 수 있어 신기했어요. 우리나라 말뚝이 가면이 마음에 들었는데, 코가 크고, 피부를 붉게 칠해 강함을 표현했죠. 가면극을 통해 사회를 풍자했다는 것도 재밌었어요. 중국의 경우 영웅이나 신 관련 가면이 있었고, 머리 장식도 화려해서 멋졌죠. 일본은 사실적으로 인물을 표현한 것이 우리나라랑 달랐던 것 같아요. 삼국의 가면 표현 방식과 이야기는 다르지만, 서로가 화합하며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명운서(서울 구암초 5) 학생기자

말뚝이 가면을 든 명운서 학생기자.

말뚝이 가면을 든 명운서 학생기자.

탐관오리들이 세금을 필요 이상으로 걷어갈 때, 백성들은 한없이 울부짖으며 ‘말뚝이’를 부릅니다. 그러자, 말뚝이가 나쁜 양반들을 혼내줍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우리나라 옛 서민문화, 가면극입니다. 이번 취재로 한·중·일 가면과 가면극에 대해 알아봤어요. 한국 가면극에선 나쁜 양반들을 서민 대표 ‘말뚝이’가 혼내주는 내용이 가장 재밌었어요. 양반 가면은 주로 못생기고, 혹이나 점이 잔뜩 있는데, 말뚝이 가면은 힘이 센 것을 나타내는 큰 코에 부리부리한 눈과 새빨간 얼굴이죠. 중국의 가면은 주로 나무로 만들고, 신과 영웅이 대상이며, 일본의 가면은 가면 자체가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게 흥미로웠어요. 기회가 된다면 가면극을 관람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규리(서울 위례별초 5) 학생기자

취발이 가면을 든 박규리 학생기자.

취발이 가면을 든 박규리 학생기자.

‘MASK-가면의 일상, 가면극의 이상’ 전시 취재를 위해 국립민속박물관에 갔어요. 한·중·일 삼국 가면과 가면극은 모양새는 다르지만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꿈꾸는 같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나라의 ‘탈소제’예요. 탈소제는 1년을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의 소망을 담아 연희에 사용했던 가면을 태우고, 관람객과 같이 어울려 춤을 추며 가슴속의 한을 태우는 행사라고 합니다. 약 200점 정도의 가면이 전시돼, 국보 하회탈 가면과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가구라 가면, 중국의 나희 가면 등 귀한 가면을 볼 수 있으니 소중 친구들도 관람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정아인(서울 영훈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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