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몸과 마음은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심한 고열로 응급실에 다녀와서 처음으로 항생제를 먹고 있는, 어느덧 한 살 반이 된 딸아이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현대의학의 필연성을 깊이 느꼈다. 우리 인류가 간단한 항생제도 없이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애잔한 고난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대부분의 인류 세기에서 아동 사망률이 50%나 되는 충격적 사실을 되새기니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현대병원의 전신, 아스클레피오스 성전이 떠올랐다. 서양의학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로의 아들로,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는 실력을 자랑하는 반인반신의 영웅이다. 기원전 5세기 말 의학과 치료의 신으로 승격된다. 이후 그리스 전역에 수많은 아스클레피오스 성전이 세워졌고, 수많은 병자가 그곳에 머무르며 치료를 받았다.

아메리카 편지

아메리카 편지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은 단순한 숭배 장소가 아닌, 복잡하고 다채로운 생활과 치유의 공간이었다. 병자를 수용한 건물, 기도와 숭배의 성전, 퍼포먼스와 공연의 극장, 목욕시설, 심신을 단련하는 김나지움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종합센터였다. 더욱이 남녀노소 모두 부와 권력에 무관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 폭발적인 효과는 수많은 증언에 의해 입증됐다. 특히 신전에서 하룻밤 지내며 꿈을 통해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신비로운 기운을 받는 치유방식이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종교적 의례에 편파적으로 주목할 이유가 없다. 그 성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깨끗한 목욕과 마음의 정화를 거쳐 그 당시의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기술과 상통하는 전인적인 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이렇듯 현대의학의 근원이 과학과 종교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몸과 마음의 웰빙이 하나의 개념으로 상통한다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와 더불어 한의학의 지혜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