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구당 로봇 수 세계 1위인데, 서빙로봇 70%가 중국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8호 12면

서비스 로봇 걸음마 단계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SCEWC) 2023’에서 서울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서울시 휴머노이드 로봇 알파미니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서울디지털재단]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SCEWC) 2023’에서 서울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서울시 휴머노이드 로봇 알파미니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서울디지털재단]

바지를 입듯 로봇에 다리를 집어놓고 허리 벨트를 채우자 누군가 뒤에서 일으켜 세운 듯 기립했다. 상체를 살짝 숙이기만 해도 로봇 센서가 사용자의 근육 움직임을 파악해 보행을 도왔다.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 엑소아틀레트가 개발한 의료용 재활로봇 시연 모습이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열린 돌봄로봇 전시회에서 선보인 이 로봇은 척수 등에 손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재활을 위해 만들어졌다. 회사 측은 “재활로봇 최초로 발목모터를 적용해 자연스러운 보행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며 “현재 국내 병원과 재활센터 50여 곳에 보급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시회에는 돌봄과 관련한 서비스용 로봇을 제작하는 국내 6개사 참가했다.

지금까지 로봇산업의 중심은 산업용 로봇이었다. 자동화 공장 등에서 사용하는 제조업용 로봇을 중심으로 로봇산업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로봇 밀도(노동자 1만명당 로봇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세계 로봇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2021년 기준 1000대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의 932대에서 68대(7%)가 늘어난 것으로, 로봇 밀도가 네자릿수로 올라선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2011년 347대와 비교하면 10년 사이에 약 3배가 늘었다. 이어 싱가포르·일본·독일 순으로 대개 인건비가 높은 제조업 강국을 중심으로 산업용 로봇 대수가 높았다. 자동화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은 5위로, 처음으로 미국(9위)을 앞섰다. 보고서는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주도하는 한국은 산업용 로봇의 주요 고객”이라고 분석했다.

전 세계 로봇시장 규모는 336억 달러(약 44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57%는 특수로봇을 포함한 서비스용 로봇이 차지한다. 글로벌 로봇산업은 크게 제조업 현장에서 자동화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시장과 의료(수술로봇), 가정(청소로봇), 군사(정찰로봇) 등 서비스용 로봇시장으로 나뉜다. 삼성전자가 내년 출시를 앞둔 웨어러블 로봇 ‘봇핏’ 역시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보행을 돕는 서비스 로봇으로 알려졌다. 최근 증권가에서 로봇주 상승을 주도한 두산로보틱스나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강점인 분야는 협동로봇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협동로봇이란 공장 같은 곳에서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일할 수 있는 소형 로봇을 말한다. 류지호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은 “공장에 등록된 로봇을 산업용이라고 정의하는데, 협동로봇의 경우 부피가 작고, 공장뿐 아니라 각종 물류센터나 식당, 카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 로봇이 될 수도 있다”며 “산업용과 달리 서비스용 로봇은 아직까지 절대 강자가 없어 국가별, 기업별 표준 선점 작업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로봇 밀도는 세계 1위지만, 우리나라의 서비스용 로봇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 로봇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로봇산업 매출 규모는 전년대비 2.5% 증가한 5조6083억원이었다. 이중 산업용이 2조8740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반면 전문·개인서비스용 로봇 규모는 1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 서비스 분야 후발주자인 중국(14조원)에 비해서도 한참 뒤쳐진다. 규모도 작다. 국내 로봇사업체 2500개 가운데 중소기업 비율이 98.7%에 달한다. 그중 절반은 매출 10억원 미만으로 영세한 수준이다.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기술출자로 설립된 로보케어는 세계 최초로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지훈련 로봇 ‘시버’를 개발하고, 치매환자와 발달장애아를 위한 돌봄 케어로봇을 만들고 있다. 오성훈 로보케어 이사는 “시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서빙로봇의 70% 이상이 중국제품일 정도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이라며 “국산보다 20~30%가량 원가가 낮다 보니 중국산 기기를 들여와 소프트웨어만 입히는 식의 회사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술력 있는 국산로봇업체에 대한 지원이 있지 않으면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장 조사업체인 리서치앤마켓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서비스 로봇시장이 연평균 36.15%의 성장률을 기록, 2030년 250조원 규모로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기업과 조직이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와 노동력 부족, 무역 문제, 공급망 붕괴와 같은 다양한 외부 요인이 겹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결책으로 서비스 로봇과 같은 최첨단 기술에 눈을 돌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에선 인력난이 심화하며 서비스 로봇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17일부터는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 시행되며 ‘공장 밖 로봇’의 활동 반경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간 로봇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도 통행이 어려웠다. 이번 법 개정으로 로봇의 실외활동 제약이 풀리면서 앞으로는 로봇을 활용한 배달이나 순찰 등에 상용화가 쉬워진 것이다. 이준석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로봇산업의 중심축이 이제는 기술에서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며 “로봇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정수기 렌탈처럼 로봇을 구독하는 ‘RaaS’(Robot as a Service·서비스 로봇) 사업 모델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달·물류 등의 모빌리티 분야에서 RaaS시장이 급성장 중이고, 앞으로 AI·자율주행·협동로봇 등의 기술 발전에 따라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