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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개성공단 30개 시설 무단 가동…통일부 "분명히 책임 묻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8일 북한이 2016년 2월 전면 폐쇄된 개성공단 내의 한국 공장 30여곳을 무단으로 가동하고, 2020년 6월 폭파 후 방치해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에 대한 철거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한국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하면서다. 김정은 정권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가 반영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여러 차례에 걸친 우리 정부의 촉구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들의 설비를 계속해서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남북 간 합의의 명백한 위반이자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지적한다"고 말했다.

"대북 인지전 가능성" 

구 대변인은 "개성공단 내 차량 출입 움직임 및 무단 가동 정황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며 "현재 30여 개의 기업의 시설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계기관과 함께 위성 정보를 파악하고, 이와 별도로 야간 또는 주간에 육안으로 지속적으로 관찰해 오고 있다"며 "(이런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 숫자"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월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앞서 중앙일보는 북한이 개성공단 내 한국 기업 소유의 공장 30여 곳을 무단으로 가동하고 있고, 북·중 접경지역 등지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중국 기업의 투자나 일감 유치를 요청하고 있다는 정황을 단독 보도했다.(4월 18·20일자 1면)

북한의 불법행위 동향을 공개하고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통일부가 대북 인지전에 가세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기조에 맞춰 관련 정보가 파악되는 즉시 대내외에 알려 "다 들여다보고 있다", "선은 넘지 마라"는 경고를 내놓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압박하는 전략을 선택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미는 지난 9월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당시 양국 간 협력 내용을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인지전을 펼친 바 있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통일부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대북 정보 분석과 정보 관련 협력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것과 연계된 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2020년 6월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2020년 6월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연락사무소 정리작업도 시작"

북한이 2020년 6월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며 폭파한 남북연락사무소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구 대변인은 이날 "지난달 말부터 개성공단 내 연락사무소 건물의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이) 훼손된 건물의 잔해를 철거하는 중에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 철거하고 있는지는 확인해줄 만한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최근까지 잔해를 그대로 방치해왔는데 위성 사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잔해 정리 작업이 시작된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8월 미국의소리(VOA)는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촬영한 위성 사진을 근거로 "남북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 주변에 흩어져 있던 건물 잔해가 상당 부분 사라진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구 대변인은 "북한이 우리 국민, 기업, 정부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즉각 중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며 "정부는 우리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북한에 분명히 책임을 묻고 필요한 조처를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불법 행위에 맞서 비례성 원칙에 맞는 대응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다. 실제 정부는 지난 6월 북한이 개성공단 내 연락사무소를 불법적으로 폭파한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고자 북한을 상대로 447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첫 소송이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지난 6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 6월 북한이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건과 관련해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지난 6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 6월 북한이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건과 관련해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성공단 내 잔해를 철거하고 시설을 무단 가동하는 것과 관련해 "남북 관계 개선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ㆍ미 관측 장비로 충분히 들여다보이는 개성공단 내에서 무단 가동 및 철거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향후 공단 재개를 고려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남북 관계 개선 가능성을 접어두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개성재단 해산 수순?

일각에선 정부가 검토하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개성재단)의 해산을 위한 포석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이번에 공개한 대북 동향이 특별히 새로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통일부 구조개편이 시작된 지난 7월 개성재단의 연내 해산을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개성재단 홈페이지는 접속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부 직원의 희망퇴직까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곧 해산이 본격화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공단에서 선전구호로 추정되는 게시물(왼쪽 사진 속 붉은 동그라미)이 곳곳에 걸려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월 촬영한 같은 장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공단에서 선전구호로 추정되는 게시물(왼쪽 사진 속 붉은 동그라미)이 곳곳에 걸려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월 촬영한 같은 장소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 안팎에서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에 대한 소송 제기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대한 지원·관리와 더불어 재단에 주요 업무가 될 가능성이 컸던 '대북소송'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대북소식통은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을 정리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전날 감사원이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결과와 관련해선 "이번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에 유념해 앞으로 남북관계 상황 발생 때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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