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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비만약' 출시 파장…"33조원 손실" 경고 나온 업종

중앙일보

입력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본격적인 비만 치료제 경쟁에 돌입하면서 다른 산업 분야에 미칠 파급력에 미국 월가가 주목하고 있다. 비만약 시장의 확대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미국에서 한 여성이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투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한 여성이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투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미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미국 현지에서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의 판매를 시작했다. 현지 언론은 이 약이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의 공급난을 해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 미국에서 출시된 위고비는 수요 폭발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두 비만약은 체중을 평균 15~20%가량 감량해 '기적의 약'으로 불린다. 여기에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지난 4일 비만 약 후보 물질 개발사를 총 31억 달러(약 4조원)에 인수하며 비만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도 후보 물질을 임상시험 중이다.

미 월가는 2030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이 1000억 달러(약 131조 2800억원)까지 성장하고, 2035년 미 성인의 약 7%(2400만 명가량)가 비만 치료제를 사용할 것으로 내다본다. 비만약이 미국에서 공적 의료보험 대상이 될 경우 시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을 인용해 "비만약이 여러 업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분석가들은 비만약이 투약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면서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한다.

"옷장 교체 주기 빨라진다"  

비만약 시장 확대가 호재로 작용할 업종으로 의류 분야가 우선 꼽힌다. 4일 CNBC에 따르면 미 월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의 유명 투자 전문가 짐 크레이머는 "체중을 감량한 소비자들이 체형에 맞는 새 옷을 사면서 의류 업계가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비자들의 허리 사이즈 변화로 이익을 얻은 대님 브랜드 리바이스 사례를 들었다. 실제로 최근 6개월간 리바이스의 주가는 약 15% 상승했다.

미국에서 허리 사이즈를 측정하고 있는 사람. 미 국민의 42%가 비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허리 사이즈를 측정하고 있는 사람. 미 국민의 42%가 비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비만약으로 인한 체중 감량이 운동할 동기를 부여하고, 이에 따라 스포츠 의류 브랜드가 수혜주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분석가 로렌 허치슨 지난 10월 블룸버그통신에 "비만약으로 옷장 교체 주기가 빨라질 수 있다"며 "운동복 브랜드 룰루레몬, 데커스 등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6개월간 룰루레몬의 주가는 약 29% 상승했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아담 코크란은 아이다스·푸마 등을 수혜주로 지목했다. 다만, 체중 감량 인구 증가로 플러스 사이즈 의류 브랜드는 고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만 치료제는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억제한다. 이에 따라 식품 업계에 타격이 있을거란 관측이다. 다만 육류와 고단백 식품 생산 기업의 전망은 밝다는 분석이다. 비만 치료제 투약 환자들의 근육 손실 예방을 위해 의사들이 단백질 섭취를 권장하기 때문이다. 크레이머는 미 최대 육가공 업체 타이슨푸드와 햄 등 가공육, 단백질 보충제를 판매하는 호멜푸드 등을 잠재적인 수혜주로 꼽았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식품 기업들 생산 제품 재편 움직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식품 업계에선 스타트업부터 대기업들까지 비만약 투약자들을 위한 식품을 개발하거나 식단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는 비만약 투약자들의 영양 보충용 신제품을 이르면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단백질 음료 판매사인 벨링브랜드의 주가는 최근 1년간 100% 넘게 상승했다고 WSJ은 전했다.

의외의 수혜 업종도 있다. WP에 따르면 미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비만약의 영향으로 항공사는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승객의 몸무게가 평균 10파운드(약 4.5kg)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비행기 한 편당 무게 1790파운드(약 811kg)가 줄어 항공사당 연간 8000만 달러(약 1049억원)의 연료비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거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비만약 젭바운드. AP=연합뉴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비만약 젭바운드. AP=연합뉴스

물론 가장 유망한 업체는 비만 치료제 개발사들이다.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는 최근 노보노디스크의 주식을 상당수 사들였다고 알려졌다. 노보노디스크는 주가가 올 들어 46%가량 상승하며 프랑스 명품그룹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됐다. 7일 기준 노보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은 4450억 달러(약 590조2000억원)다.

일라이릴리는 젭바운드에 대한 기대감과 마운자로(젭바운드의 당뇨병 치료제 버전)의 흥행으로 올 들어 주가가 60%가량 급등했다. 시가총액이 5593억 달러(741조8000억원)로 전 세계 제약사 중 1위에 올랐다. 다만 제약사 화이자는 임상 중 부작용이 발견돼 하루 두 번 먹는 비만약의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지난 1일 주가가 개장 초반 5% 넘게 하락했다.

외식·담배·술 업계도 타격   

반대로 과자·도넛·콜라 제조사들은 긴장하고 있다. 월마트는 지난 10월 비만약을 복용하는 이들이 일반 고객에 비해 식품 구매량과 칼로리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오레오 쿠키 제조사인 몬델리즈인터내셔널의 주가는 이 발표 후 이틀간 7.7% 하락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8월 1일부터 지난 11월 20일까지 일라이릴리의 주가가 31% 상승하는 동안 크리스피크림의 주가는 15% 하락했다고 전했다. 미 트루이스트은행은 도넛 제조사 크리스피크림의 투자 의견 등급을 매수에서 보류로 하향 조정했다.

WP는 비만약이 콜라 회사의 주가 하락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모건스탠리가 올 여름 비만약 투약자 300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65%가 "설탕이 든 탄산 음료 섭취를 줄였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6개월간 코카콜라의 주가는 약 4%, 펩시콜라를 생산하는 펩시코의 주가는 약 8% 떨어졌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한 레스토랑. 비만 치료제의 확산으로 외식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FP=연합뉴스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한 레스토랑. 비만 치료제의 확산으로 외식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FP=연합뉴스

외식 업계도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다. WP에 따르면 미즈호증권의 분석가 댄 돌브는 비만약이 2025년까지 미 식당 산업에 250억 달러(약 33조원)의 손실을 입힐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 파장이 외식 장비 판매 업체, 식품 도매 유통 업체들로 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비만약이 생활습관을 바꿔 중독적인 행동을 줄이면서 담배·술·게임·도박 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식단 관리 위주의 다이어트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미 최대 체중 관리 업체 웨이트워처스는 최근 이용자가 급감해 오프라인 매장 여러 곳을 폐쇄했다고 CNN이 전했다. 비만 관련 수술 감소로 관련 수술 기기 제조사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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