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기현 뼈때린 인요한 "정치가 얼마나 험난한지 배웠다, 감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끈 국민의힘 혁신위가 출범 42일 만인 7일 문을 닫았다. 24일까지였던 종료 시점을 보름가량 앞둔 조기 해산이다.

인 위원장은 이날 12차 혁신위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통해 “사실상 오늘 혁신위 회의를 마무리한다”며 “국민이 뭘 원하는지 잘 파악해서 우리는 50%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머지 50%는 당에 맡기고 기대를 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혁신위는 오는 11일 당 최고위에 지금까지 나온 혁신안을 종합해 최종 보고할 계획이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제1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며 손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제1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며 손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다만 인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정치가 참 어렵다”며 혁신위 활동 간 소회를 털어놨다고 한다. ‘당 지도부ㆍ중진ㆍ친윤’ 인사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이른바 ‘희생’ 안건을 당 주류의 반발로 관철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인 위원장은 회의에서 “이순신 장군과 하나님은 같은 말을 하셨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회의 뒤 브리핑에서 인 위원장은 김기현 대표를 향해 뼈있는 말을 남겼다. “개각을 일찍 단행해 좋은 후보가 선거에 나올 기회를 주셔서 대통령께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고 운을 뗀 그는 “두 번째는 김기현 대표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치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 이렇게 알아볼 기회를 주셔서 많이 배우고 나간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전권을 준다’고 해놓고선 희생 권고를 사실상 묵살한 김 대표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철수 의원과 만나 혁신위 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날 만남은 인 위원장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24분간의 회동 뒤 안 의원은 취재진과 만나 “혁신은 실패했다고 본다”며 “저도, 인 위원장도 치료법을 각각 제안했지만 환자가 치료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젠 김기현 대표와 당 지도부가 어떤 방향으로 민심을 회복하고 총선 승리를 끌어낼 것인지 답을 내놓을 차례”라고 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ㆍ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들어선 국민의힘 혁신위 활동에 대한 당내 평가는 엇갈린다.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던 인 위원장은 혁신위 출범 다음 날부터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전 최고위원 등의 징계를 해제하는 ‘대사면’을 제안했다. 또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광주 5ㆍ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 제주 4ㆍ3 평화공원을 참배하는 등 당 안팎의 ‘통합’ 노력에 대해 정치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 수도권 원외위원장은 “강서구청장 패배 이후 연일 혁신을 외쳐 민주당과 차별화를 이룬 점은 긍정적”이라고 했다.

당내에선 혁신위의 희생 권고 역시 추후 공천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혁신위의 집요한 희생 요구가 결과적으로 추후 당 공천 방향을 ‘희생’으로 정리해놓은 셈”이라며 “당 대표 등 주류세력이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6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6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인 위원장이 공을 들인 희생 권고가 시기적으로 너무 일찍 나왔다는 이른바 ‘과속론’은 혁신위의 대표적 실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가장 핵심적인 안건인 만큼 물밑 조율 과정을 거쳐 활동 중ㆍ후반부에 희생 권고안을 냈더라면, 추후 들어설 공천관리위원회에 자연스레 인계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거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혁신위원은 “우리가 속도 조절을 못 한 건 맞다. 현실보다 이상에 더 치우쳤던 것 같다”고 했다.

여당 위기의 본질로 꼽히는 수직적 당정관계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혁신위엔 뼈아픈 대목이다. 이준석 전 대표를 겨냥해 “도덕이 없는 것은 부모 잘못”이라고 하거나, “저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해달라”는 등 인 위원장의 잦은 설화도 혁신위 동력을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한 쓴소리도 나온다. 수도권 지역 의원은 “인요한 위원장을 ‘전권을 주겠다’고 불러놓고 ‘싫은 소리 한다’며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든 셈”이라며 “김기현 체제 유지를 위한 시간벌기용이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인 위원장이) 한편의 개그 콘서트를 보여주고 떠났다”며 “기득권 카르텔에 막혀 좌절했지만 그대가 있었기에 한줄기 희망이라도 있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