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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여성세습 하겠냐더니…'김주애'에 헷갈리는 韓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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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공군 주요 시설을 방문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지난 11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공군 주요 시설을 방문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인 김주애와 관련한 세습설을 놓고 정부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김정은이 공개 활동에 주애를 대동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만 해도 정부 당국이나 대부분의 대북전문가는 북한 내 '봉건적 남존여비 인식', '가부장적 문화' 등을 이유로 꼽으며 '여성 지도자'의 등장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주애를 계속 주요 군 관련 행사에 앞세우자 당국의 판단도 바뀌는 분위기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언급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장관은 지난 6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를 계속 전면에 내세우며 '4대 세습'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에서 4대 세습에 의한 '여성 권력'의 탄생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이와 관련,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세습 과정에서 일종의 조기등판이라고 볼 수 있다"며 "김주애의 4대 세습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새별 장군'이 김정은의 유년시절 애칭이었던 만큼 북한에서 '새별(샛별) 여장군'으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진 주애의 1인자 등극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0월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 간부들이 함께 말을 타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0월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 간부들이 함께 말을 타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정보 당국도 북한이 주애를 최소한 후계자 '후보군'에 올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당국은 '김정은의 첫째가 아들이라는 첩보가 있기 때문에 후계자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기존 입장에서 주애의 후계자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주애의 권력승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후계문제를 설명한 『후계자 문제의 이론과 실천』(김재천, 평양: 출판사 불명, 1989년)에선 "수령의 후계자는 어디까지나 인물을 본위로 하여 선출해야 한다"며 "남성이건 여성이건 청년이건 장년이건 관계없이 특출한 인물이면 후계자로 선출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적어도 주애가 후계자에 오르는 데 성별이나 나이를 문제삼는 제도는 없다는 얘기다.

다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북한에선 여전히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통일연구원은 2018년 발간한 『김정은 정권 핵심집단 구성과 권력 동학』이란 제목의 연구총서에서 "북한은 남성중심의 지배질서를 설파하는 유교 문화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개인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핵심집단은 여성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분석한 바 있다.

지난 9월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권수립 75주년 민방위무력 열병식 주석단에서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지난 9월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권수립 75주년 민방위무력 열병식 주석단에서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실제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부터 대내외에 노출되는 주요 직위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기용했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예외적 처우를 받는 북한 내 파워 엘리트들이다.

정상국가 지도자의 '퍼스트레이디'로 치장한 부인 이설주, 대남·대미 등 대외사업을 총괄하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외교를 총괄하는 최영림 전 내각총리의 수양딸 최선희 외무상, 의전을 총괄하는 모란봉악단 단장 출신 현송월 당 부부장 등 대부분 백두혈통이거나 북한 권력의 핵심인 항일 빨치산을 비롯한 로열 패밀리 출신으로 '성분' 자체가 일반 주민과는 다르다.

또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유일지도체계인 북한에서 잠재적인 후계자군인 최고지도자의 자녀 수나 성별·나이 등 구체적인 신상정보는 극비로 취급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당국이 김정은의 자녀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도 확인을 거듭하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정은 첫째가 아들이라는 첩보가 있어 계속 확인 중"이라는 것이 김정은의 아들 존재 여부에 대한 국정원의 공식입장이다. 아들이 없다고도 단정하지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이 어린 딸조차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딸을 내세워 대내적으로는 백두혈통의 건재를 과시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정보 판단에 혼란을 유도할 수 있는 일종의 미끼처럼 던져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북한이 후계자를 거론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김정은 후계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건 북핵이나 북한 인권 등 북한 관련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게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주애 띄우기'에 과민반응하는 게 오히려 김정은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일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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