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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부동산 기부 선의 막는 ‘조세 문턱’ 낮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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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

저출산·고령화 및 청년 실업 등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오롯이 정부만의 힘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 이래로 국제사회에서 정부 기능을 보완하는 비영리조직(NPO)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비영리 부문은 이미 복지 등 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했고, 2021년 개인 기부금이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도 성숙했다.

최근 들어 기부문화가 또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현금이나 물품 외에 부동산 등 비현금성 자산을 기부에 활용한다거나, 평생 노력해 축적한 부를 유산기부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좋은 일 하는데 왜 세금까지” 불만
기부받은 비영리단체 세부담 커
법 개정해 통큰 기부 물꼬 터줘야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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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기부문화의 역동성에 비해 관련 제도는 어떤가. 여전히 관련 법제는 유관 단체를 관리·감독하는 데 그치고 있다. 특히, 현행 조세 관련 규제는 기부자와 비영리조직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우리 사회의 기부 활성화를 막는 높은 문턱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기부자들이 현금 대신 나눔을 고려하는 대표적 자산은 부동산이다. 비영리조직 입장에선 통상적으로 기부받은 부동산의 현금화를 통해 사업에 활용하고 있어 결국 매각이 불가피한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취득세 12%를 부담해야 하기에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비영리 단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기부 자체가 적극적으로 성사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취득세를 납부하고 부동산 기부를 받더라도 매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재산세를 기부받은 비영리단체가 부담해야 부분도 문제다. 아울러 대체로 후원금 위주로 운영되는 비영리조직의 특성상 부동산을 처분하는 경우에 드는 재원 문제도 발생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출연 재산을 3년 이내에 공익목적사업 등에 사용해야 한다는 등의 기간 제한을 두고 있다. 이 점도 비영리조직이 처분하기 쉽지 않은 비현금성 기부 자산을 중장기적으로 복지사업에 충분히 활용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기부자가 부동산을 미리 매각한 대금을 후원할 수도 있다지만, 부동산을 직접 팔고 양도 차익에 대한 세 부담까지 져야 한다고 하면 누가 선뜻 기부에 나설 수 있겠나. 일례로 한국에서는 기부자가 부동산 처분 자산의 50%를 노후자금으로, 나머지 50%를 기부하려는 경우에도 기부 금액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별도로 부과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기부자들 사이에서 “좋은 일에 자산을 내놓겠다는데 왜 세금을 더 내야 하느냐”라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 밖에도 유산을 기부하려는 경우에는 상속증여로 간주하며, 세 부담 때문에 상속받은 부동산의 기부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제도의 문턱으로 인해 비영리조직이 취득할 수 없어 기부가 이뤄질 수 없는 농지 같은 비현금성 자산도 존재한다.

이처럼 비현금성 자산 기부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활성화에 대한 관심이 높고, 개선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최근 눈에 띄는 움직임은 지난 10월 국회에서 정우택 의원(국민의힘) 대표 발의로 공익 목적 법인 등의 기부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및 재산세를 80% 감면하는 내용이 담긴 ‘지방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마련된 것이 좋은 사례다.

이 개정안은 현재 특례 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는 공익 법인과 단체까지 부동산 기부 관련 지방세 감면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개정안은 아직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되는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현실화되면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의 기부를 촉진하는 초석을 마련하는 유의미한 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고령화에다 저성장이 심각한 상황에서 아동 돌봄, 교육 격차 등 여러 사회 문제에 정부보다 직접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민간의 역할이 더 강조될 전망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안전하게 출산·양육하고 누구나 걱정 없이 아이들을 병원에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현금이든 부동산이든 힘을 보태고 싶다는 기부자들에게 세금 폭탄 대신 응원을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경주 최부자’가 되려는 뜻을 품은 잠재적 기부자들이 법과 제도를 동력 삼아 선뜻 통 큰 나눔에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