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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초저출산 위기와 방송의 영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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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하정훈 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하정훈 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0.78명으로, 1명도 되지 않는 세계 최저 수준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하버드대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도 지적했듯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세계적 석학이 주목할 만큼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부터 부동산, 일·가정 양립, 사회 전반의 경쟁 풍토 등을 원인으로 진단하며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정부도 이를 바탕으로 5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더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다자녀 지원 정책, 육아휴직 기간 확대, 소득보전액 인상, 부모수당과 아동수당 제공 등이다.

결혼·출산에 부정적 보도 많아
“육아는 힘들다” 편견 심어줘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 알려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청년들은 더는 결혼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19~34세) 의식 변화’를 보면 결혼에 긍정적인 청년은 10년 전 56.5%에서 2022년 36.4%로 줄었다. 결혼을 해도 53.5%는 자녀가 필요 없다고 여긴다. 이처럼 결혼과 출산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이 계속 부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에만 의존하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플랫폼과 다양한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미디어를 접할 수 있는 시대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정보가 과다할 정도로 쏟아진다. 무엇보다 그런 정보는 단순한 사실 제공을 넘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의 틀로 작용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면 ‘결혼은 지옥이고 육아는 고난’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키운다.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는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는 부모들 이야기로 도배되고 인터넷에는 평범한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육아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된다. 아니면 힘든 육아 이야기로 가득하다.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결혼과 출산의 삶을 접하다 보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로 극단적 장면이 많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의 노력이 거꾸로 저출산을 부추기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전문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 키우기 힘드니 이런저런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결혼하거나 아이를 키울 때 지원이 부족해 키울 수 없는 것 같다는 불안을 불러온다. 저출산 대책을 언급할 때도 “아이 낳고 키우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늘 먼저다. 물론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해소하는 정책에 대해 필요한 지적일 수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넘치면 대책보다는 ‘어렵다’는 말이 먼저 귀에 꽂힐 수밖에 없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된 이후 10년도 넘게 이런 부정적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듣고 사는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에 긍정적일 수 있을까. 일부 언론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요즘 일부 방송은 앞다퉈 “결혼과 출산은 어렵다”고 선전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청년들은 이런 부정적 메시지에 장기간 노출되다 보니 “그럼 그 힘든 거 아예 지원 안 받고 안 낳고 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필자가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부모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크지만, 그런데도 다시 선택하더라도 가족을, 아이를 꼭 선택하겠다는 부모들이 더 많다.  방송의 특성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함보다는 갈등이 드러나고 치유되는 과정이 더 극적인 재미를 줄 수 있을 테지만, 이제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은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방송 등 미디어에 필요한 시대적 요구이다.

지금처럼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하면 대한민국이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모든 사회가 공유해야 할 때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많은 해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혼과 출산에 따른 부정적 문제만 부각하지 않고 좀 더 균형 잡힌 정보 및 행복한 가정의 모습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가족과 아이가 함께하는 행복과 기쁨을 많은 국민이 누리는 건강한 사회 문화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방송 등 미디어의 선한 영향력을 간절히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정훈 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