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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학업 성취 높지만 더 커진 성적 격차, 학력 양극화 줄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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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중앙포토]

지난달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중앙포토]

학력 격차 OECD 평균 1.4배, 기초학력미달 10년 새 5배

고득점 사교육·선행학습 대신 사고·창의력이 주축돼야

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한국 학생들의 수학·과학·읽기 성적은 모두 최상위권이었다. OECD 국가 중 수학·과학 점수가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일본뿐이며, 읽기는 아일랜드·일본 다음이다.

그러나 학생 간 성적 격차가 크다. 개인의 성적 분포를 뜻하는 분산 비율(98.1%)이 OECD 평균(68.3%)보다 1.4배가량으로 높다(수학). 10년 전(69.2%)보다 격차가 더 커졌다. 우수 학생 못지않게 성적이 저조한 학생도 많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국내 중3 학생의 국어·영어·수학 기초학력미달 평균 비율은 2012년 2.2%에서 지난해 11.1%로 5배나 뛰었다.

기초학력미달 학생이 많아진 이유는 진보교육감 등을 필두로 한 학력 경시 풍조가 학교 전반에 자리 잡은 탓이 크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학력 결손은 고교까지 누적돼 성인이 된 뒤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득수준이 높은 가정에선 학원 등의 사교육으로 결손을 메울 수 있지만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교가 신경 쓰지 않으면 보완하기 어렵다.

기초학력은 학생이 학업을 지속하고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법률은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국가 책무를 명시하고 학교의 역할을 정해 놨다(기초학력보장법 3·8·9조). 그렇기 때문에 기초학력미달 학생의 증가는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학력 격차의 심화는 도약의 사다리를 없애며 불평등의 세습을 부추겨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시험 고득점과 실제 학력의 간극이 없는지도 따져볼 때가 됐다. 수학·과학 성적이 한국보다 낮은 미국·유럽 등 서구권 학생들이 대학 진학 후 두각을 나타내는 건 교육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이 문제풀이엔 능숙해도 깊게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문명 발전의 원동력은 물질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추상하고 공통의 기호로 이론화하는 능력이다. 핵심은 언어와 수학·과학이다. 인간은 언어를 매개로 사고하며 개념과 정의, 공리와 증명을 통한 논리로 세상을 객관화한다. 진정한 학력은 정답을 잘 맞히는 스킬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두뇌에 배어 있는가를 뜻한다. 주입식 암기나 단순한 문제풀이보다 깊고 넓게 궁리케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학력의 정의를 새로 내릴 때가 됐다.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술자로 양산하는 입시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융·복합적으로 해법을 찾는 창의적 인재를 키워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새로운 인재 전략과 교육 개혁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