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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징비록 남겨야 할 엑스포 참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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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중앙SUNDAY 편집국장

예영준 중앙SUNDAY 편집국장

겉으로 드러난 양상으로 보면 엑스포 유치전의 참패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닮은꼴이다. 17%포인트 차로 여당이 패배했다는 구청장 선거 결과가 나오던 날 밤, 윤석열 대통령은 왜 정확한 상황을 진작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참모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이미 선거 현장의 표심은 기울어져 있었고, 여당 내부에서조차 두 자릿수 득표율 차로 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대통령에게는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엑스포 유치전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표결  결과를 보고 나서야 그동안 올라온 보고와 전망이 부풀려진 것임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대국민 담화에서 “저희가 느꼈던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한 것이 그 증표다.

판세 잘못 읽고 ‘역전승’ 희망고문
대통령과 국민에게 허위 보고한 셈
해외 정보망 갖춘 국정원은 뭐 했나

하지만 두 사안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엑스포 유치전의 경우 대통령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허위 보고를 받았다는 점이다. 많은 국민이 ‘박빙’이란 정부의 홍보를 믿고 ‘희망고문’을 당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정부는 국제박람회기구(BIE) 182개 회원국의 지지 동향을 시시각각 수집하고 확보된 표의 숫자를 매일같이 집계했다. 필자는 9월께에 더블스코어로 열세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대략 70표를 확보했고, 한국은 그 절반을 약간 넘는 수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이 수치도 ‘따따블’로 진 실제 표결 결과에 비하면 희망이 많이 섞인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30여 개국 정상과 양자회담을 하는 등의 노력으로 격차를 좁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더니 막판에는 ‘박빙’으로 추격 중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당국자들은 2차 투표까지 가는 걸 기정사실처럼 얘기하며 뒤집기가 가능하다고 호언했다. 1차 투표에선 사우디를 지지하지만 2차 투표에서는 한국을 지지하는 ‘교차투표’를 약속한 나라가 15개국 정도 있다는 것이 역전론의 근거였다. 솔직히 그런 나라가 있을까 싶었는데, 결과는 2차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정부의 최종적 판세 분석은 사우디 90표, 한국 50표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 결과보다 한국은 20여 표 부풀려졌고, 사우디는 30표 정도 과소평가한 수치였다.

필자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 이런 가공의 숫자에 취해 있을 때 누군가는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가감없는 대통령에게 보고했어야 옳았다. 외교공관 못지않게 촘촘한 해외 정보망을 갖춘 국가정보원은 그런 임무를 하라고 있는 조직이다. 그런데 그 무렵 국정원은 지휘부가 서로 알력을 빚다 한꺼번에 교체되는 내홍에 휩싸여 있었다. 만일 국정원이 독자적으로 판세 분석을 하지 않았다면 임무의 방기고, 분석은 했지만 결과가 정부 부처의 것과 대동소이했다면 능력 부족이다. 만일 정확한 분석은 했는데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느라 직보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존립 근거에 대한 부정으로 최악의 사태다. 어느 경우든 안보는 물론 ‘국익 정보’까지 챙겨야 할 국정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크로스체크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엑스포 실패는 결코 가벼이 지나칠 일이 아니다. 지더라도 당장은 크게 잃을 것이 없는 엑스포 유치전이었기 망정이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이 걸린 안보 문제에서 이런 오판이 벌어졌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생각해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유치운동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다”는 ‘정신승리’적인 자평으로 넘어가거나, ‘따따블’의 ‘참패’를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둔갑시키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한참 어긋난다. 촘촘히 작동해야 할 국가 기구의 시스템이 어느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켰는지,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정보가 가지 않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반드시 징비록을 써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은 제 부족의 소치”라고 한 대통령의 말에 담긴 충심을 의심치 않지만, 그것이 모든 실패와 실책에 면죄부를 주는 말이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