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인간사냥 같았다" 한밤 음주 車 쫓은 자칭 '자율방범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0대 직장인, 음주운전했다 봉변 

전북 전주에 사는 직장인 A씨(46)는 '그날'만 떠올리면 후회와 함께 분노가 치민다. 운전면허는 그날 음주운전으로 취소됐다.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113%로 취소 기준(0.08%)을 넘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과 특수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A씨는 5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음주운전을 한 건 잘못이지만, 이런 약점을 잡아 경찰도 아닌 이들이 운전자 한 명을 토끼몰이하듯 추적하는 건 인간 사냥과 같다"며 "한밤중 일면식도 없는 5명이 차를 포위하니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달 28일 특수공갈미수·업무방해·폭행 혐의로 B씨 등 5명을 전주 완산경찰서에 고소했다. 이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경찰은 "B씨 일행이 '우린 음주운전을 적발한 공익 제보자'라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도대체 A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달 1일 새벽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아파트 인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A씨(46·작은 빨간 원)에게 한 여성(큰 빨간 원)이 욕설하고 있다. 당시 이 장면을 한 주민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 캡처. [사진 A씨]

지난달 1일 새벽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아파트 인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A씨(46·작은 빨간 원)에게 한 여성(큰 빨간 원)이 욕설하고 있다. 당시 이 장면을 한 주민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 캡처. [사진 A씨]

음주운전 헌터?…특수공갈미수·폭행 5명 고소

고소장과 경찰 1차 조사 내용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일 오전 1시30분쯤 전주시 효자동 한 술집에서 지인과 술을 마신 뒤 헤어졌다. A씨는 '집까지 1㎞ 남짓 거리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운전석에 앉았다.

집에 도착한 A씨는 주차장에 자리가 없자 차를 돌렸다. 이때 흰색 SUV 차가 길을 막아섰다고 한다. A씨는 술을 마신 상태여서 차 밖으로 나가 따지지 못했다. A씨가 차를 후진하자 곧바로 SUV 차가 앞으로 따라붙었다.

A씨는 동네를 크게 돌다가 SUV 차가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을 본 뒤 왔던 길로 돌아가 아파트 단지 밖 상점 옆에 차를 댔다.

A씨가 차에서 내리자 곱슬머리를 한 남성(B씨)이 말을 걸었다. 경상도 억양으로 "저기 사장님, 술 드신 것 같은데 잠깐 와서 '후'하고 입김 불어보세요"라고 했다.

당황한 A씨는 "당신이 뭔데 그러냐"고 물었다. B씨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그 순간 '작업'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 A씨는 다급한 마음에 다시 차를 탔다. 하지만 B씨가 차 앞을 막아섰다. A씨가 큰소리로 "비켜"라고 외쳤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경찰 음주운전 단속 장면.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뉴스1

경찰 음주운전 단속 장면.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뉴스1

"미친X아" 욕설하고 머리채 잡아 

A씨는 조금씩 앞으로 차를 움직였다. B씨는 A씨 차 보닛을 잡고 3~5m 뒷걸음치거나 매달린 채 통화 중인 상대에게 "나 달고 간다. 빨리 와"라고 소리쳤다.

두 사람이 승강이하는 사이 외제 차가 나타나 A씨 차 앞을 가로막았다. 얼마 후엔 흰색 SUV 차가 A씨 차 뒤를 막았다. 술집에서부터 아파트까지 A씨를 따라온 그 차였다고 한다.

이때 외제 차에서 2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내리더니 다짜고짜 A씨에게 "X발X아" "미친X아" 욕설을 퍼부었다. 급기야 A씨 차 문을 열더니 A씨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끌어내렸다.

순식간에 남녀 5명이 A씨 주위를 둘러쌌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주민들이 몰려나오자 B씨가 A씨에게 "이렇게 됐으니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시죠"라고 했다. 그사이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후 B씨는 "A씨 차에 다쳐 병원에 가겠다"며 SUV 차를 타고 떠났다. A씨가 B씨 일행인 검정 조끼 입은 남성에게 "당신 정체가 뭐냐"고 묻자 "자율방범대"라는 답이 돌아왔다.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된 A씨가 지난달 1일 승강이 과정에서 차를 막아선 B씨에게 받은 문자 일부. [사진 A씨]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된 A씨가 지난달 1일 승강이 과정에서 차를 막아선 B씨에게 받은 문자 일부. [사진 A씨]

A씨 측 "합의금 노린 범행 의심" 

A씨는 B씨 일행이 처음부터 '음주운전을 한 사람'을 노리고 역할을 분담, 범행을 공모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법규 위반 차를 골라 고의로 사고를 낸 뒤 합의금이나 피해금을 요구하는 '보험 사기'와 수법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A씨 측 강신무 변호사는 "B씨 일행은 '상해 진단서를 내면 처벌이 무거워진다'며 합의를 종용했다"며 "형사 절차를 잘 아는 점에 비춰 상습범일 가능성이 커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B씨 일행은 "차가 비틀비틀 가니 음주운전인 줄 알고 쫓아갔다"며 "(112에 먼저 신고하지 않은 건) 경찰관들이 피곤해할까 봐 확인해 보고 신고하려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본인 차로 B씨를 민) 특수폭행 부분은 블랙박스에 찍혀 다툼의 여지가 없다"며 "다만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정확한 사건 경위와 혐의 여부 등은 조사해 봐야 한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