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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외국인 가사도우미, ‘한국식 모델’을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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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한 달에 서너 번은 꼭 만나는 언니가 있다. 홍콩에서 30여년 살았고, 귀국한 지 2년쯤 지났다. 늘 따뜻한 미소로 용기를 북돋워 주곤 한다. 식사를 같이하던 어느 날, 올봄 조정훈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화제로 등장했다. 언니는 홍콩에서 같이 거주한 간호사 출신 도우미에 관한 경험담을 꺼냈다. 가족처럼 언니의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도 안부를 묻고 지낸다고 한다. 당시 월급이 홍콩의 최저임금보다 낮았지만, 필리핀 전문의 수준이라면서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다. 자녀들 모두 캐나다 유학까지 보냈고, 지금은 수백 에이커의 옥수수 농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아이·노인 대한 사회적 돌봄 절실
저개발국 도우미 투입 찬반 갈려
저출산·고령화로 국가 존립 위태
해법 모색 국민토론회라도 열자

언니는 법안을 찬성했다. ‘이웃 국민과도 한 가족을 이룰 수 있고, 우리 국민도 삶의 질이 높아지는 제도’라고 말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고갈도 가뭄에 단비처럼 해갈해 줄 거란 말엔 귀가 솔깃해진다. 우리나라 저출산은 남녀의 임금 격차도 한몫한다. 여성 10명 중 4명이 결혼,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고, 이는 임금의 적잖은 격차를 초래한다. 육아 휴직도 알고 보면 수입이 반토막이다. MZ 여성들이 아이 대신 일을 선택하는 이유다. ‘여성들이 취업과 출산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경력 단절을 걱정할 필요 없는 대책, 전업주부도 자녀 교육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제도’란 주장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다. 노령과 장애 환자를 돌보는 경우엔 상당한 고통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간병은 경제적 파산을 불러온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간병비만도 월 수백만원이다. 돈을 벌어도 고스란히 간병비로 들어가니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빈곤층 노인은 간병인 없이 방치되기까지 한다. 노인들은 맞벌이 자식 대신 손자 돌보느라 갖은 질병에 시달리고, 마지막엔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홍콩은 훈련받은 도우미들이 노인을 위한 산책, 운동, 목욕, 간병 등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인들이 ‘집에서 늙고 죽을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정부도 필리핀 가사도우미 100명을 시범 도입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국내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대부분 국민은 도움받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건 인권 이슈가 중요한 우리에겐 너무 어려운 문제다. 나는 언니에게 홍콩 모델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위반하는 ‘차별적 노예계약’이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거란 말을 슬쩍 던졌다. ILO 규약과 근로기준법상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할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언니는 깊은 한숨을 짓는다. “최저임금도 좀 탄력적으로 운용하면 좋겠어. 직종과 산업, 지역별로 설계를 다시 할 순 없는 거니?”라고 묻더니 홍조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지금도 저개발국가에선 양질의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 필리핀이 내놓은 가이드라인도 월 500달러를 넘지 않아. 그래도 본국에선 적지 않은 돈이야. 가족을 가난에서 구출하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월급보다 중요한 건 ‘인격적 대우’야. 얼마든지 가족처럼 지낼 수 있어. 나는 인권운동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어.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게 인권인가.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희망을 주는 게 인권인가’라고 말이야.”

나는 “언니처럼 나이스한 사람은 도우미들을 존중하겠지만, 사람에 따라선 차별과 학대 이슈도 생기지 않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언니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고용계약 전에 법과 규칙, 인권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고, 초기 갈등은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것도 좋을 거야. 난 오히려 가사도우미들이 들어와도 우리나라에선 산업 현장으로 옮기기 쉽고, 불법체류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 홍콩은 2년마다 갱신하는 비자 요건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이민 경찰이 불법 체류자를 수시로 단속하지. 우리도 무언가 방안이 있어야 할 거야. 단, 영주권은 많이 고민해야 해. 프랑스나 영국, 독일같이 사회문제로 불거진 예도 있으니 말이야.”

언니와 나는, ‘일자리’에 목마른 저개발국과 ‘돌봄’이 절실한 대한민국은 분명 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 깊이 공감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프랑스나 영국과도 차별화한 ‘한국식 모델’을 빨리 찾아내고, 한국 언어나 문화의 수용을 적극 권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로 끝없는 대화를 마무리했다.

우리나라도 불과 60여년 전 파독 간호사, 광부들의 피땀 흘린 노동이 국가 경제에 일조했던 경험이 있다. 내년엔 비숙련 외국인까지 역대 최대규모로 들어온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반세기 만에 대한민국은 ‘극단적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로 국가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에 처했고, 용단을 내릴 골든타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책 마련에 머리 맞댈 ‘국민토론회’라도 열자!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