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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높은 로펌 관두고 공익변호사 길…그녀가 서울 떠난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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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공익모임 나우 공익변호사 대상을 수상한 이주언 변호사가 30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학대사건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여성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법조공익모임 나우 공익변호사 대상을 수상한 이주언 변호사가 30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학대사건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여성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장애인·아동·난민 등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변호사도 소수다.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공익변호사는 100여 명이다. 이주언 변호사(사단법인 두루·사법연수원 41기)는 그 중에서도 소수다. 서울·경기가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는 한 자릿수다. 이 변호사는 공익변호사를 “소수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변호사”라고 정의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던 두루 사무실을 8년 가까이 오가다 지난해 부산으로 내려간 이 변호사를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만났다. 이 날 이 변호사는 부산진구 양정동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찾아 학대사건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여성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는 4일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는 법조공익모임 나우(이사장 홍기태)가 선정하는 공익변호사 대상을 수상한다.

일반 로펌에 가는 변호사가 다수다.
연수원을 마치고 경험을 쌓으려 3년 정도 로펌에서 일했다. 월급 많이 받아 부모님 생활비도 드리고 장점이 많았지만, 맞지 않는 옷 같았다. 이왕이면 더 돕고 싶은 사람을 도우며, 더 유연하게 일을 하고 싶었다. 로펌에서는 송무·자문 틀 안에서 전형적인 활동을 하지만, 공익변호사는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한다. 입법을 추진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거나 UN에 가고 기자회견도 한다. 부모님은 보다 안정적으로 살길 바랐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소수자 중에서 장애인 인권 문제에 힘쓰게 된 계기는.
대학교 1학년 때 야학 활동을 하러 간 곳이 장애인 거주 시설이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체험학습 식으로 함께 외출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운 지 깨달았다. 뇌병변 장애가 심해 글자판에 빨대를 찍어 소통을 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 ‘야 너 나랑 동갑인데 친구하자’고 해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 친구를 비롯해 대부분 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했는데, 그런 과정을 보며 어떻게 하면 다른 삶이 가능할지, 그러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 등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지난달 30일, 부산진구 양정동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학대사건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여성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는 이주언 변호사. 송봉근 기자

지난달 30일, 부산진구 양정동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학대사건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여성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는 이주언 변호사. 송봉근 기자

기억에 남는 사건은.
시각·청각 장애인을 대리해 영화관을 상대로 한 기획소송을 진행해 1심 전부승소, 2심 일부승소한 후 대법원에서 심리중인 사건이 있다. 편의점, 카페, 호텔을 상대로 공중이용시설 접근권을 보장하라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관련 법은 그럴싸하게 있는데 실제로는 시행령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돼 있다. 100평 이하 편의점은 적용 예외란 식인데, 100평이 넘는 편의점은 국내에 한 군데다. 카페와 호텔은 화해권고결정으로 정리돼 이행하는 방향으로 개선됐고, 편의점 상대로는 승소판결을 받아 확정됐다. 이런 잘못된 시행령을 만들어 25년 이상 장애인 권리를 침해해 온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진행중이다.
이주언 변호사는 지난해 남편인 이현수 교수와 함께 공감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사진 출판사

이주언 변호사는 지난해 남편인 이현수 교수와 함께 공감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사진 출판사

MBTI 열풍과 함께 공감능력이 화두인데, 소수자에 대한 공감은 왜 인기가 없을까.
잘 모르면 공감하기 어렵다. 편향된 정보를 얻기 쉬운 사회다. 어떤 글에 ‘좋아요’를 누르면 그 성향에 맞춘 정보가 제공되고, 한 사이트에서 어떤 물건을 찾으면 다른 사이트의 비슷한 물건이 노출되는 세상이다. 공감의 전제는 정보 습득인데,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소수자 문제는 제대로 알기 어렵다. 왜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 시위가 얼마나 극성인지나 그로 인해 시민들이 얼마나 불편한지에 대한 정보에는 쉽게 노출된다. 저 역시 선호하는 시위 방식은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그분들 삶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서울을 떠났나.
지역에서 할 일이 더 많겠다고 생각해 왔다. 원래는 2015년에 로펌을 그만 두고 바로 지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법률사무소 시소’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시시하고 소소한 상담도 잘 듣고 작은 일이라도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현 두루(법무법인 지평이 설립한 공익법인) 이사장이기도 한 당시 장애인법연구회 회장님(임성택 변호사)에게 이 계획을 말했더니 “우선은 장애인권 쪽 활동을 서울에서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해 합류했다. 지난해 3월 결국 내려오면서 두루를 그만둘 각오였지만 다행히 지역 공익활동 하는 것이 두루의 가치와도 맞다고 해 두루 소속을 유지하게 됐다. 
수상 소감과 앞으로의 포부는.
연수원 때 인권법학회 지도교수님들이 공익변호사 하겠다는 후배들을 지원하겠다며 기금을 만든 게 2013년이다. 당시 나우라는 단체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실무 작업에 도움을 드린 적이 있다. 그렇게 10년동안 나우는 한결같이 공익변호사들을 지지·지원해 왔다. 저는 지역에서 공익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 싶다. 공익법 생태계를 만들어 동료 전업 공익변호사를 만들어 내고, 또 일반 활동 하면서도 공익활동을 하고싶어 하는 분을 찾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역할을 지역에서도 쭉 하라는 의미에서 상을 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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