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게 손 논란에 "민주노총 탈퇴 검토"…넥슨 노조의 분노 왜 [팩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넥슨코리 사옥 전경. 사진 넥슨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넥슨코리 사옥 전경. 사진 넥슨

게임회사 넥슨의 노동조합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탈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남성 혐오(남혐) 손동작’이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에 포함됐다는 논란으로 넥슨이 이용자들에게 사과한 데 대해 민주노총이 넥슨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자 넥슨 노조원들 사이에 민주노총 회의론이 퍼진 것. 지난 5년간 판교의 정보기술(IT) 업계의 젊은 직원들을 노조원으로 흡수했던 민주노총의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무슨 일이야

3일 IT업계에 따르면 넥슨의 배수찬 노조위원장은 지난 29일 노조 커뮤니티에 입장문을 내고 “(민주노총) 총연맹은 우리와 어떠한 논의도, 사안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며 “우리에게 민주노총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원점부터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8일 민주노총과 한국여성민우회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넥슨 사옥 앞에서 넥슨 게임의 운영진을 규탄하는 시위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남성 혐오 손동작’ 논란에 대해 넥슨이 사과하고 후속 조치 계획을 밝힌 것은 ‘페미니즘 혐오’를 조장하는 ‘마녀사냥’이라는 이유에서다.

배 지회장은 해당 글에서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하청 문제가 생길 때 아무런 협의 과정 없이 총연맹이 와서 규탄 시위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산하 지회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고, 심지어 (논란이 된) 손가락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적었다. 넥슨 노조는 지난 2018년 출범 당시부터 다른 IT기업 노조들처럼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지회로 활동해왔다.

넥슨 노조는 왜?

넥슨 노조 측은 조합원을 보호해야 할 민주노총이 되려 넥슨 직원들을 비판하며 ‘남혐 사상 검증’에 기름을 부은 것은 부적절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애니메이션 속 ‘집게 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를 표현하기 위해 고의로 삽입됐는지를 둘러싸고 넥슨을 비롯한 게임사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게임사 직원들에게 “페미니스트인지 답하라”는 폭력적인 메시지와 사진을 보내고 있다. 이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1일 악성 이용자의 폭언 등으로부터 게임사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달 중 게임업체 10곳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넥슨 노조의 반응을 두고, 민주노총의 정치적 활동이나 쟁의 방식에 거리를 뒀던 IT 노조들이 이번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식 현장 집회에 대한 거부감, 사측을 적대 관계로 보는 전통적인 노사관계에 공감하지 못하는 2030 세대 IT업계 종사자들의 인식이 넥슨 노조에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IT업계의 젊은 노조원이 많아지면서 화섬노조 내에서 IT 기업 지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 9월엔 노조명을 ‘공감노조’로 바꾸자는 규약 변경안을 두고 대의원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노조명 변경안은 반대 측과 3표 차이로 부결됐다.

 11월 28일 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과 민주노총이 판교의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항의 집회를 했다.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11월 28일 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과 민주노총이 판교의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항의 집회를 했다.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왜 중요해

2600명 규모의 넥슨 노조가 ‘민주노총 탈퇴 검토’ 의사를 비친 것만으로도 민주노총 화섬노조의 확장 전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노조가 생긴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스마일게이트·엑스엘게임즈·웹젠 노조도 화섬노조 소속이다. 익명을 요청한 IT기업 노조 관계자는 “넥슨 노조는 화섬노조에 가입한 첫 게임사 노조라는 상징성이 있고, 게임사 노조들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며 “넥슨이 실제 민주노총을 탈퇴하면 후폭풍이 클 수 있어 다른 IT노조들도 사태를 유심히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넥슨 노조가 실제 민주노총에서 실제 탈퇴할 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여러 논의와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이 날 가능성은 작다. 화섬노조도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배수찬 넥슨 노조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신환섭 화섬노조 위원장과 최근 민주노총 탈퇴와 관련 대화를 했고, 신 위원장이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총연맹에 강하게 항의하겠다’고 했다”며 “민주노총을 탈퇴하게 된다면 (IT나 게임산업 종사자를 위한) 산별 노조를 새롭게 만들어야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