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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국 진보의 선 자리와 갈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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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칼럼에서 우리 보수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해 썼다. 그렇다면 우리 진보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진보란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삶과 사회를 모색하려는 사상적·정치적 기획을 통칭한다. 서구사회에서 진보는 근대 초기의 계몽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기원을 둔다. 계몽주의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역사를 진보시킬 수 있다고 설파했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변혁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 근대의 진보는 변화·진화·발전과 동의어였다.

불평등 해소, 환경 보호, 성평등
21세기 지구촌 진보 3대 의제
이념과 갈라치기의 한국 진보
‘열린 진보 3.0’으로 나아가야

서구 현대의 진보에는 두 차례의 결정적 모멘트가 존재했다. 첫 번째 모멘트는 혁명과 개혁 노선의 분화였다. 20세기 전반에 그것은 ‘자본주의 밖의 혁명(국가사회주의)’과 ‘자본주의 안의 개혁(사회민주주의)’으로 구체화했다. 국가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면, 사민주의는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론을 거점으로 삼았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스웨덴 사민당은 개혁 노선의 대표 주자로 평가됐다.

두 번째 모멘트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제3의 길’이었다. 제3의 길은 구(舊)사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넘어서려는 중도진보 기획이었다. 시장의 활력을 북돋는 신혼합경제의 도입과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는 적극적 복지로의 전환이 중핵을 이뤘다. 영국 블레어 정부, 독일 슈뢰더 정부, 프랑스 조스팽 정부, 나아가 미국 클린턴 정부까지 제3의 길 안에는 여러 작은 길들이 놓여 있었다.

21세기의 서구 진보는 서유럽의 전통적 사민주의, 미국의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민주주의 신사회운동을 포함해 스펙트럼이 넓다.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관찰된다. 첫째, 세계화와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이 전통적 제조업을 쇠퇴시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불만이 높아졌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 일부는 진보 세력과의 동맹에서 이탈해 포퓰리즘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둘째,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커져 왔다. 기후위기 대처와 성평등 구현은 불평등 해소와 함께 21세기 진보의 3대 의제를 이루고 있다.

우리 진보의 역사는 서구와 사뭇 달랐다. 1945년 광복 직후 보수와 진보는 분출하고 격돌했다. 그런데 6·25전쟁 이후 냉전분단체제가 공고화하면서 진보의 활동 공간은 불허됐다. 진보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사회적 시민권을, 1999년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통해 정치적 시민권을 다시 획득했다.

우리 진보에서 영향력이 컸던 세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로 대표되는 더불어민주당 계통의 정치세력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복지국가를 결합한 ‘한국적 제3의 길’을 추구했다. 진보학계가 두 정부의 성격을 ‘중도자유주의’로 명명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 주목할 것은 민주당 세력이 중도에서 진보로 자신의 정체성을 점차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2010년 이후 민주당 세력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한반도 평화를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삼았다. ‘반독재 투쟁론’이 ‘한국 진보 1.0’을 이뤘다면, ‘경제민주화·복지국가·한반도평화론’은 ‘한국 진보 2.0’이라 부를 만했다.

진보 성향 세력으로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에게 요구된 것은 ‘한국 진보 3.0’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에는 명암이 공존했다. 진보 2.0의 과제인 복지국가를 강화하고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효율적인 방역을 추진한 것은 성과로 평가할 만했다. 하지만 부동산정책에 실패했고 공정 구현에서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적폐청산에 일관해 사회통합을 일궈내지 못한 것은 그늘을 이뤘다. 진보에 가장 뼈아픈 것은 민주화 시대부터 견고한 지지층을 형성했던 2030세대 다수가 진보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시선에 우리 진보는 20세기적 이념을 고수하고 정치적 갈라치기에 주력하는, 기성 보수 기득권과 별반 차이 없는 신흥 기득권의 ‘닫힌 진보’로 비치고 있다.

진보는 하나로 이뤄져 있지 않다. 국회에서 다수를 이루는 ‘정치적 진보’, 거리의 정치를 주도하는 ‘운동적 진보’,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문화적 진보’ 모두 진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자율적 개인을 옹호하고 구조화된 불평등을 해소하며 환경·성평등·평화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은 진보의 일차적인 덕목이다. 개인과 공동체, 국가와 사회,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생산적 공존은 물론 이질성의 포용이라는 개방적 태도를 중시하는 ‘열린 진보’는 ‘한국 진보 3.0’이 가야 할 길일 것이다.

나는 진보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보수와의 경쟁·대화·타협을 거부하는 진보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책의 혁신만이 진보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선언한 이는 영국의 진보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다. 현재 우리 진보에 요구되는 것은 닫힌 진보에서 열린 진보로의 ‘진보의 진보화’다. 대한민국 미래의 삶과 사회를 놓고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생산적으로 경쟁하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