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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몰랐을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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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지난달 29일 새벽.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투표가 막 시작되자 현장에 있던 정부 당국자가 전한 말이다. 역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눈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밀 정보라도 있는 줄 알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119표, 부산이 29표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해외 출장 때마다 ‘막꺾마(막판까지 꺾이지 않는 마음)’를 외쳤고, 어떤 대통령실 참모는 윤석열 대통령의 60여 개국 연쇄 정상회담을 “100년간 외교사에 없을 일”이라며 치켜세우지 않았나. 예상외 투표 결과를 받아본 윤 대통령은 이날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역대급 불수능’이 끝난 직후 정부 내에선 자화자찬이 쏟아졌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킬러 문항이 사라졌다는 자평이었다. 사교육 스킬을 요구하는 문제도 없어졌다고 했다. 킬러 문항 논란에 비판적이던 일타강사들이 세무조사를 받았기 때문일까. 이젠 아무도 킬러를 킬러라 부르지 못한다. 최근 학원가엔 재수생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엑스포 결과와 겹치며 묘한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다.

대통령실을 취재하면 내부 인사들로부터 반복해 듣는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대통령은 최고의 정보를 받아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듣기보다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 말이 맞는다면 엑스포는 물론, 지난 10월 여권이 17.15%포인트 차로 대패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민심도 대통령실은 알았어야 한다. 킬러 문항이 사라졌다는데, 왜 사교육 업계가 환호하는지도 따져봐야 했다.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을 대통령실 사람들만 모른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윤 대통령은 일하기 편한 대통령이다.” 정부 고위관계자 중에 의외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논리적으로 정책의 필요성이 설득되고, 국민이 필요하다면 정치적 고려 없이 과감히 밀어준다는 이유를 든다. 문제는 대부분의 관계가 ‘기능적 상하 관계’에 머문다는 점이다. “일하기 편하다”는 그들에게 “고언을 한 적은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런 역할까지 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대답한다.

처참한 엑스포 성적표를 보고 떠올랐던 첫 번째 질문은 “왜 몰랐을까”였다. 최고의 정보를 받는다면 가장 정확했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뻔히 밝혀질 일임에도, 모두가 한 사람을 향한 보여주기에만 집중했던 건 아닐지.

이해관계와 욕망, 압박감과 간절함이 엉킨 엑스포 총력전은 대국민 희망고문으로 이어졌다. “왜 몰랐을까”를 묻다 보니 “몰랐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란 생각도 든다. 부러 진실을 알려 하지 않았고, 굳이 말하려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