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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별세에 시진핑도 조전 발송…“中국민의 라오펑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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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9 신경제 포럼에 참석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11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9 신경제 포럼에 참석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현대 외교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29일(현지시간) 타계 소식에 각계의 추모가 쏟아졌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은 외교 문제에 있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뚜렷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키신저는 미국과 세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며 “장관으로 있는 동안 그가 보내준 은혜로운 조언과 도움에 항상 감사할 것”이라고 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비범한 삶에서 얻은 지혜를 끝없이 베풀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외신은 별세 소식을 긴급 타전하며 세계 외교사에 깊숙이 새긴 그의 명암을 조명했다. 키신저를 과거 여러 차례 인터뷰했던 뉴욕타임스(NYT) 데이비드 생어 기자는 부고 기사에서 “키신저와 같은 열정으로 존경을 받고 또 욕을 먹은 외교관은 거의 없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이어 “그는 마오쩌둥부터 시진핑까지 모든 중국 지도자들을 상대한 유일한 미국인이었다”며 키신저 전 장관이 만 100세를 맞은 지난 5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댜오위타이에서 시 주석을 만나 극진한 대접을 받은 일을 언급했다.

2018년 11월 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오른쪽)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2018년 11월 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오른쪽)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키신저를 두고 “미국 내 외교정책에서 비할 데 없는 권력을 휘두른 학자, 정치가, 유명 외교관”이라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동시에 역임한 유일한 인물인 그는 대통령직은 지내지 않았지만 그와 거의 동등하게 미 외교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이익을 인권보다 우선시하는 냉혈한 실용주의자라는 비난도 받았다”고 짚었다. 실제로 키신저는 1969~1973년 캄보디아 폭격을 주도한 의혹으로 전범 취급을 받은 적 있고 1970~1980년대 남미 반체제 인사를 탄압한 미국 ‘콘도르 작전’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었다.

中애도 물결, “소중한 친구” 2분 영상 틀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30일 헨리 키신저 박사의 서거에 대한 깊은 애도와 유가족에게 위문을 담은 조전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키신저 박사는 중국 국민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이자 좋은 친구였으며 중·미 관계의 개척자이자 건설자”였다면서 시 주석의 조문 전달 소식을 전했다.

왕 대변인은 “그는 오랜 기간 중·미 관계의 발전에 관심과 지지를 표했으며, 100여 차례 중국을 찾아 중·미 관계의 정상화를 추진하는 데에 역사적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 국민은 키신저 박사가 중미 관계에 쏟은 진지한 감정과 중요한 공헌을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왕 대변인은 왕이(王毅) 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조문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셰펑(謝鋒) 주미 중국대사는 이날 X(옛 트위터)에 “키신저 박사의 서거에 깊은 충격과 비통에 빠졌다”며 “우리나라와 세계에 거대한 손실”이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셰 대사는 “역사는 키신저가 중·미 관계에 끼친 공헌을 기억할 것이며 그는 소중한 라오펑유로 중국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며 고인의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1970년대 ‘핑퐁 외교’로 미ㆍ중 수교의 기틀을 닦은 키신저 전 장관의 타계 소식을 주요 기사로 다루며 애도를 표했다. 중국중앙TV(CCTV)는 키신저의 생애를 돌아보는 1분 57초짜리 영상을 보도하며 “키신저 전 장관은 전설적 외교관이자 중ㆍ미 관계의 발전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고 평했다. 또 “그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중국 방문을 성사시켜 세계를 뒤흔든 ‘태평양을 넘어서는 악수’를 이뤄냈다”고 했다.

중국신문망은 고인을 ‘중ㆍ미 관계의 증인’으로 칭하고 그가 생전에 중국을 100여 차례 방문한 사실을 부각하며 “그가 중ㆍ미 관계를 위해 걸출한 공헌을 했다”고 평했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는 소셜미디어 X 글을 통해 “깊은 충격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그의 죽음은) 양국과 세계 모두에 엄청난 손실이다. 역사는 그가 중ㆍ미 관계에 기여한 바를 기억할 것이고 그는 가장 소중한 오랜 친구로 중국인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AP통신은 “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외교관 중 한 명인 키신저 전 장관의 별세에 양극화된 반응이 쏟아졌다”며 “미국의 국익을 옹호한 유능한 인물이라는 극찬이 있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지속적인 피해를 남긴 전범으로 널리 불리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미 롤링스톤지는 키신저의 부고를 전하며 ‘미국 지배층이 사랑한 전범 헨리 키신저, 마침내 사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전쟁 중’ 러 푸틴도 “키신저, 美실용 외교 대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07년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린 미러 회담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07년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린 미러 회담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각각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이스라엘을 포함한 세계 정상들은 잇따라 조의를 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키신저는 미국의 실용적 외교 노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이로 인해 소련·미국은 국제적 긴장을 완화하는 협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면서 “나는 이 심오하고 비범한 인물과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대화할 기회를 가졌으며, 의심할 여지 없이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키신저 박사의 별세는 그의 지성과 외교적 능력이 미국 외교 정책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주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의미”라면서 “그는 외교뿐 아니라 정치술의 대가였으며, 우리 세계가 직면한 도전에 대한 그의 특별한 통찰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관저에서 취재진을 만나 “그는 미·중 국교 정상화 등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공적을 남긴 인물로, 나도 자주 직접 만나 식견을 얻었다”고 조의를 표명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세계는 위대한 외교관을 잃었다. 키신저의 헌신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미·독 간 우정에 중요했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키신저는 역사의 거인이었다”며 “세기의 사상과 외교 활동은 그의 시대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애도를 표했다.

한국 외교가도 조의를 표명했다. 서울의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은 “전 세계 평화와 안정에 큰 공헌을 한 키신저 박사의 서거를 애도한다”면서 “키신저 박사는 한국 국민의 평생 친구였으며, 우리는 키신저 박사와 그의 현명한 조언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연구원은 이어 “6.25 전쟁 당시 하버드 대학원생이었던 키신저 박사는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힘의 우위를 활용해 주요 지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해 향후 공산주의 세력에 대응하는 데 기초가 됐다”면서 “키신저 박사의 역할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세계 질서 유지에 대한 키신저 박사의 열정과 통찰력은 후학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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