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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선거개입 1심까지 3년 10개월…그 사이 임기 다 채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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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송철호 전 울산시장이 2018년 선거개입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뉴스1

송철호 전 울산시장이 2018년 선거개입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뉴스1

2018년 울산시장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부당한 선거개입을 했다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피고인들에게 법원이 재판 시작 3년10개월만에 유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3부(부장판사 김미경‧허정무‧김정곤)는 29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울산경찰청장)에게는 징역 3년,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에겐 징역 2년의 실형을,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송철호 후보의 청탁을 받고 하급자에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당시 울산시장) 주변에 대한 수사를 시키고, 백원우·박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송철호·송병기의 청탁으로 문해주 청와대 행정관이 만든 불법 첩보를 경찰에 전달했다는 게 유죄 이유의 골자다.

반면 당시 송철호 후보와 경선에서 경쟁하던 임동호 전 민주당 울산시당 위원장에게 공사 사장직을 제안하며 사퇴를 요구한 혐의로 기소된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송철호 캠프의 공약을 만드는 데 참고용 자료를 제공한 울산시청 공무원들도 집행유예 내지는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공공병원 관련 선거 공약을 만드는 걸 도와주는 등의 혐의를 받은 장환석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이진석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2017년 하반기, 당시 울산시장이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재선을 막고 송철호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김기현 대표 주변에 대한 수사 ▶송철호의 당내 경쟁자에 대한 사퇴종용 ▶송철호 선거공약 작성을 돕는 등의 부당 선거개입을 저질렀다고 보고 2020년 1월 기소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수사 청탁‧비서관실 부당감찰 모두 유죄

2018년 송철호 당시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후보의 청탁으로 경쟁자였던 김기현 당시 현직시장 주변 수사를 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도 유죄가 인정됐다. 그는 이후 2020년 총선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됐고, 내년 5월 임기가 끝난다. 뉴스1

2018년 송철호 당시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후보의 청탁으로 경쟁자였던 김기현 당시 현직시장 주변 수사를 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도 유죄가 인정됐다. 그는 이후 2020년 총선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됐고, 내년 5월 임기가 끝난다. 뉴스1

재판부는 “황운하 울산경찰청장 부임 후 첫 외부인사 식사자리를 송철호와 가진 뒤 김기현 대표 측근의 비리 수사를 ‘적폐청산’ 으로 부각시키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세웠다”며 “차기 시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야당 현직 시장에 대해 수사가 시작될 경우 선거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황운하 의원이 수사를 진척시키기 위해 수사 담당자들을 부당 발령내는 등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반부패비서관실에서 이첩하는 첩보는 수사개시 여부에 부담을 가지는 점을 이용해, 적극 수사 진행을 위해 직접 인편으로 보내기까지 했다”며 “피고인들이 ‘통상의 업무였다’고 주장하지만, 감찰권이 없는 현직 시장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고 이첩하는 게 업무라면 이는 대통령비서실에서 권력을 이용해 정치인이나 민간인을 사찰하고 수사의뢰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불법 첩보 보고서를 작성한 문해주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대통령 비서실의 선거개입 행위”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에게는 징역2년이 선고됐다. 뉴스1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에게는 징역2년이 선고됐다. 뉴스1

재판부는 황운하‧백원우‧박형철‧문해주 피고인에 대해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채 수사기능‧감찰기능을 특정인‧정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이용했다”며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할 경찰조직과 대통령 비서실의 공적 기능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국민의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친 선거개입 행위를 엄중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공익상 필요가 매우 크다”고 질책했다.

또 송철호‧송병기‧황운하‧백원우 피고인에 대해서는 “범행을 전혀 뉘우치지 않아 죄책이 무겁다”고 강조했고, 특히 백원우 전 수석의 경우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으로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잘 알면서도 대통령 비서실의 선거개입 행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며 “그런데도  ‘첩보 이첩은 다른 비서관이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범행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짚었다.

1심 3년 10개월… 그사이 시장 4년, 의원직 4년 다 채워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공직선거법 270조에 따르면 선거법 사건 1심은 기소 후 6개월 이내에 선고해야한다. 하지만 이 재판은 선고까지 3년 10개월이 걸렸다. 피고인이 15명인데다, 각 피고인 간의 이해관계가 달라 공판준비기일만 여섯 차례, 중간에 코로나19로 재판 진행이 어려웠던 점 등도 악재였다. 2020년 1월 기소했지만, 2021년 5월에야 첫 재판이 열렸고, 거의 2년이 지난 2021년 11월에야 첫 증인신문을 할 정도였다.

선거 5년 4개월이 지나서야 피고인들의 선거개입 죄가 인정되면서 범죄자들에게 범죄로 얻은 이익을 다 누리게 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연고도 없는 울산 지역에 출마해 당선된 송철호 전 시장은, 지난해 6월 4년 임기를 다한 뒤 이미 물러났다.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은 직권남용으로 고소당해 2019년 11월 기소됐지만, 기소된 상태에서 2020년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황 의원도 이미 4년 임기 중 3년 6개월을 채웠고, 6개월 뒤인 내년 5월 임기가 끝난다.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기소된 채 2020년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항소심, 상고심까지 갈 가능성이 큰 만큼, 확정판결 전에 두 의원 모두 국회의원 임기를 다 채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정에는 현직 의원이 2명이나 피고인으로 앉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나와 선고를 지켜봤다. 피고인들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나와선 “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3년 형을 선고받은 황운하 의원은 “납득할 수 없는 판결, 법원이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만 수용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수사 청탁과 직권남용을 유죄로 인정한 데 대해서도 “오판”이라며 부정했다. 송철호 전 시장도 “검찰의 편향된 주장만 수용했다”며 역시 무죄를 주장했다.

법원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에 유죄 선고를 함에 따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에 대해 검찰이 2021년 4월 내린 불기소 처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송철호 전 울산시장, 황운하 의원 등에 대해선 기소를 하면서도 임 전 실장 등에 대해선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검찰의 결정에 불복해 서울고검에 2021년 5월 항고해 서울고검은 재수사 여부를 계속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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