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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또 '남혐' 논란…'집게 손'에 여성단체∙특공대 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제작한 게임 영상이 ‘남성 혐오’ 논란에 휘말려 게임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영상을 만든 여성 직원의 퇴사 소식이 27일 알려지고, 이튿날 여성 단체들이 항의 기자회견을 열면서 사태가 커지는 모양새다. 2016년 넥슨 게임 ‘클로저스’에서 페미니즘 성향 성우를 교체한 사건으로 불붙었던 게임 업계 남성 혐오 논란이 재현되는 분위기다.

지난 23일 넥슨이 공개한 메이플스토리 홍보용 애니메이션에서 한 캐릭터가 짧은 순간 집게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집게 손 모양은 극단적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논란이 불거진 후 넥슨은 영상을 내리고, 해당 영상을 만든 외주 제작사는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23일 넥슨이 공개한 메이플스토리 홍보용 애니메이션에서 한 캐릭터가 짧은 순간 집게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집게 손 모양은 극단적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논란이 불거진 후 넥슨은 영상을 내리고, 해당 영상을 만든 외주 제작사는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무슨 일이야?

2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홍보 애니메이션에 남성 혐오 표현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애니메이션은 넥슨의 외주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만들었는데, 급진적 페미니즘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사용되던 ‘집게 손’ 모양으로 의심되는 장면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집게 손 모양은 원래 길이가 짧다는 뜻으로 통용됐지만, 극단적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는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후 해당 애니메이션을 그린 직원 A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 ‘X’(옛 트위터) 계정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글이 다수 발견되며 논란은 확산됐다. 특히 “남자 눈에 거슬리는 말 좀 했다고 SNS 계정 막혀서 몸 사리고 다닌 적은 있어도 페미 그만둔 적은 없다.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해줄게”라는 글을 지난해 3월 X에 게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고의로 외주 제작물에 비하 표현을 넣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졌다.

스튜디오 뿌리는 26일 즉각 사과문을 냈다. 27일 오후 X에 게시한 2차 사과문에서는 A씨가 자진 퇴사했다고 밝혔다. 다만 스튜디오 뿌리 측은 2차 사과문을 곧 삭제했고, 공식 홈페이지는 폐쇄된 상태다.

28일 11시 판교 넥슨 사옥 앞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민주노총 등 9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백래시를 멈추라"고 넥슨을 규탄했다. 이영근 기자

28일 11시 판교 넥슨 사옥 앞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민주노총 등 9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백래시를 멈추라"고 넥슨을 규탄했다. 이영근 기자

이같은 사태에 여성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28일 오전 11시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에선 한국여성민우회·민주노총 등 9개 단체에서 모인 5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본사 입구에는 개인 ‘개인 사상검열·부당해고’, ‘노동법 사망을 애도한다’ 등 문구가 적힌 근조 화환 8개가 놓여 있었다. 이날 “넥슨 사옥 앞에 모인 여성 단체 참가자들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칼부림 예고 글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기자회견장에는 경찰 특공대도 배치되는 등 삼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집회 주최 측은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 손 논란을 멈춰라”고 주장했다. “(집게 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손동작에 불과하다. 집게 손은 페미니즘의 상징이 아니며, 설령 그 손 모양이 페미니즘의 상징이라도 해도 지금과 같은 반사회적 혐오 몰이는 허용돼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넥슨 직원 양모씨는 “게임 업계에 사상 검열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다”면서도 “이번엔 다수의 협업물에 개인 사상을 집어 넣어 손해를 끼친 게 문제라고 봐서 어이가 없고, 내부에선 크게 분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기업은 어떻게?  

게임사는 신속히 논란을 진화하는 중이다. 넥슨 김창섭 디렉터는 26일 오후 긴급 유튜브 생방송에 출연해 직접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넥슨 직원들은 사건이 터진 주말부터 논란이 된 제작사뿐 아니라 타 외주제작사의 영상을 전수조사 중이다. 스마일게이트 등 다른 대형 게임사들도 문제가 될만한 작업물이 있는지 전수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대형 게임사 2년 차 기획자 20대 B씨는 “게임사가 유저 간담회 등을 자주 개최하면서 게임사와 소비자의 접점이 날로 확대하고 있다”며 “매출을 쥐고 있는 소비자들의 집단 행동을 무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회의 젠더(성별) 갈등이 게임 세계로 옮겨붙은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위 교수는 “남성이 주 소비자층인 게임사는 오도 가도 못하고, 창작자들은 자기 검열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납품하는 상품에 특정 정당 로고를 몰래 삽입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오로지 페미니즘 반대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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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이런 일이…  

 게임 업계의 젠더 갈등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업계에선 2016년 넥슨 게임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을 시작으로 본다. 게임 내 캐릭터 성우 역할을 맡은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트위터에 급진 페미니스트 단체 ‘메갈리아’의 티셔츠 사진을 올렸다가 결국 교체됐다.

이후 크고 작은 게임사가 젠더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2018년 중국 게임 ‘소녀전선’의 국내 일러스트레이터가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 관련 트위터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퇴출당했다. 2020년 게임 ‘크로노 아크’ 개발자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자 땅에 머리를 박고 사과하는 인증 사진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같은 해 카카오게임즈가 내놓은 ‘가디언 테일즈’에서는 게임 내 대사가 남성혐오 사상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나와 실무진이 교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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