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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2만원, 청년은 고독사 생각한다…이렇게 10년 지낸 4만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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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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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복지 확대 정책에 따라 기초수급자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청년 수급자도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쪽방촌. 연합뉴스

정부의 복지 확대 정책에 따라 기초수급자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청년 수급자도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쪽방촌. 연합뉴스

당근마켓에서 받은 밥 5개, 후원받은 쌀과 라면, 고장 난 선풍기, 기침약, 벽의 큰 구멍….
한 청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유튜버(33)의 영상에 나오는 원룸 자취방(월세 2만원)의 풍경이다. 그는 2021년 말 기초수급자가 됐고, 집 없는 흙수저를 자처한다. 이 청년은 당근마켓 무료 나눔으로 각종 생필품을 구한다. 라면 수프가 맛있다고 여러 차례 나눠 먹기도 한다. 전자레인지를 인터넷에서 1만원에 샀고, 5000원에 산 선풍기는 고장이 나서 잘 켜지지 않는다. 창문에 청테이프로 뽁뽁이를 붙여서 겨울을 난다. 이 청년은 다른 영상에서 "생일 파티를 한 적이 없다"며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생일 무료 버거'를 받아서 맛있게 먹는다.

청년 빈곤층 갈수록 심각해져
복지 확대하자 수급자 44% 증가
독립 못해 부모 따라 빈곤 진입
"가난 대물림 막게 고용 연계를"

기초수급자 청년 유튜버 등장

 이 유튜버같이 20, 30대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크게 늘었다. 복지 확대 정책으로 느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거나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느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4만여명은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된 지 10년이 넘어 탈(脫) 빈곤의 꿈이 멀어진다. 28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분석 자료와 보건복지부 자료를 종합해 보니 청년의 빈곤층 추락이 심상치 않다. 2030 수급자는 2018년 16만5452명에서 올 8월 23만8784명으로 44.3% 늘었다. 차상위계층은 33% 늘었다. 20대 기초수급자는 32.9%, 30대는 61.6% 늘었다. 물론 전체 증가율(47.2%)보다 약간 낮고, 80대(107%), 70대(53%)보다는 훨씬 낮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젊은 기초수급자 증가는 극심한 취업난, 비정규 근로 증가 등의 사회경제적 요인과 기초수급자 선정 기준 완화 같은 제도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2015년 기초생보 급여를 생계·의료·주거·교육으로 쪼갰다. 또 교육급여는 그때, 주거급여는 2018년에 부양의무자 기준(자녀나 부모의 부양 능력을 따지는 제도)을 없앴다. 생계급여는 2021년 10월 사실상 없앴다. 이와 함께 주거급여의 기준선을 2015년 기준중위소득의 43%에서 올해 47%로 올렸다. 내년에는 48%로 오르고 50%까지 올라간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고로 올렸고 생계급여 기준선을 크게 올렸다. 기초수급자도, 수급액도 크게 늘었다.

'복지 확대-복지 안주' 걱정 

 이런 제도 변화로 인해 우선 50대 이상의 기초수급자가 급증했다. 지난 8월 60대 수급자는 2018년보다 87%나 증가했다. 70대(53%), 50대(35%) 증가했다. 정준섭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50~70대 수급자가 증가하면 20, 30대 자녀의 수급자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장성한 자녀라도 20, 30대가 부모와 같이 살면 같은 가구로 분류한다. 부모가 수급자가 되면 20, 30대도 자동으로 수급자가 된다. 20~34세 청년 세대 중 81.5%가 미혼이고, 절반 넘게 부모와 같이 산다(통계청). 게다가 미혼 20대는 부모와 떨어져 살아도 소득이 빈곤선(기준중위소득의 50%) 밑이면 부모와 한 가구인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태완 빈곤불평연구실장은 '빈곤의 대물림, 청년의 기초수급자 안주'를 걱정한다. 올 8월 기초수급자 243만여명 중 10년 넘게 수급자로 산 사람이 47만여명(19%)에 달한다. 2018년보다 21% 늘었다. 20대가 2만8183명, 30대가 1만533명이다. 수급기간 5~10년인 20, 30대가 3만2000여명에 달한다. 이렇게 오래 기초수급자를 유지한 20, 30대는 부모 따라 수급자가 된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빈곤의 대물림 미끄럼틀'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부모와 따로 사는 미혼의 30대도 기초수급자 문턱이 낮아졌다. 이런 청년은 부모와 같은 가구로 넣지 않는다. 별도 가구로 분류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4세 청년 중 1인 가구가 20%이다. 부모와 따로 산다는 뜻이다. 따로 사는 30대가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종전에는 본인의 소득·재산뿐 아니라 부모의 부양 능력을 따졌는데 이게 없어졌다. 기초수급자가 되기 쉬워졌다는 뜻이다. 이 때문인지 30대 주거급여 수급자가 5년여 만에 57% 증가했다. 33세 유튜버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덕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유튜브 영상에서 "(미래에)고독사했을 때 신원 확인이 안 되면 부모님 마음 졸일까 봐 신분증과 군번줄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한다.

청년 취업·창업 지원 강화해야

 이종성 의원은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취업 시장 적신호 등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2030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 가입 감소, 기초수급자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면서 "약자복지 강화 기조에 맞춰 기초생활 보상 수준을 강화하되 취업·창업 지원을 강화해 탈(脫) 수급을 촉진하고 근로 유인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완 실장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잡기 어렵고, 잡더라도 비정규직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잡으니 기초수급자가 되거나 거기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다"며 "고용과 복지를 연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빈곤제도는 빠르게 변하는데, 고용시장은 달라지지 않아 장기 기초수급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