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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6범 코인 사기범, 21명 호화 변호인단 꾸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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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12년 전 경찰관 4명을 범죄자로 내몬 사기범이 이번엔 경찰 전체 판을 뒤흔드네요.”

전남경찰청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지난 27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경찰을 발칵 뒤집은 ‘브로커’에 청탁한 사람이 탁모(44)씨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다”며 “사기범 하나 때문에 그런 수모를 겪고도 구태를 벗지 못한 경찰 책임이 크다”고 탄식했다.

브로커 성모(62)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경찰에 ‘삭풍’이 불고 있다. 경찰은 성씨의 수사무마 및 인사청탁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간부 7명을 최근 직위해제했다. 지난 15일 김모(61) 전 치안감이 숨진 후 성씨 관련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모양새다. 성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경찰 고위직과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로비를 벌여온 인물이다.

브로커 성모씨의 경찰 인사청탁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23일 전남경찰청 인사 관련 자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브로커 성모씨의 경찰 인사청탁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23일 전남경찰청 인사 관련 자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년 이상 위세를 떨쳤던 성씨의 존재는 지난 8월 4일 세상에 드러났다. 검찰이 수사 무마를 대가로 18억5400만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그를 구속했다. 성씨에게 금품을 건넨 탁씨 또한 코인사기를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성씨 사건이 불거지자 경찰들은 “터질게 터졌다”고 입을 모았다. 성씨가 경찰의 인사·사건 청탁에 수시로 개입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성씨를 거치면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청탁자 탁씨를 보는 경찰 시선도 착잡하다. 그가 뇌물을 건넨 경찰관 4명은 2011년 10월 검찰에 검거된 바 있다. 당시 탁씨는 온라인 게임 사기로 수사를 받게 되자 담당 경찰관들에게 뇌물을 건넸고, 검찰은 성접대와 수백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으로 이들 경찰관들을 기소했다. 사기 전과 6범인 탁씨는 2004년부터 전국을 돌며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현재는 2020년부터 수십억원대 코인 투자사기를 벌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경의 수사를 무마해주겠다”며 돈을 받은 사람이 브로커 성씨다.

‘브로커’로서 성씨의 오랜 아성을 위협한 사람이 청탁자인 탁씨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지난해 초부터 성씨와 사이가 틀어진 탁씨는 경찰에 “성씨의 비위를 제보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검찰에 성씨의 로비 정황이 담긴 휴대전화 녹음파일 등을 제출했다.

경찰 안팎에선 “탁씨가 이번에도 살아남기 위해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탁씨는 구속된 후 로펌 4곳을 포함해 전관 판·검사 등 변호사 21명을 선임했다. 28일 현재 탁씨의 소송대리인은 로펌 2곳을 비롯해 변호사만 15명에 달한다. 탁씨는 자신의 공판에 앞서 다음달 5일 성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그간 검·경에 폭로했던 성씨의 혐의가 추가로 드러날지도 탁씨의 선택에 달렸다. 탁씨의 입에 검·경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