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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유칼립투스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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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잠시 호주에 머무는 중이다. 이곳은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었다. 시드니 공항에 내려 시내를 향하는 동안 고속도로 주변의 풍채 좋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눈길을 끈다. 호주를 대표하는 자생식물로 손바닥만한 것부터 수십m에 이르는 것까지 800종이 넘는다.

유칼립투스의 조상은 원래 열대우림 태생이다. 3000만년 전 호주에 들어온 뒤 가물고 바람 많고 척박한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유칼립투스는 변화를 꾀한다.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은 작아지고 두툼해졌다. 껍질은 빛을 반사하는 흰색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꽃이 특이해졌다. 유칼립투스는 그리스어로 ‘잘 덮인’이라는 뜻이다. 꽃잎 없이 수십 개의 수술로 꽃을 피우고 이를 고깔로 덮어 보호해서 붙인 이름이다.

행복한 가드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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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는 호주 숲의 수호자이면서 동시에 파괴자이기도 하다. 호주의 산불은 대부분 자연발화다. 바짝 마른 유칼립투스 껍질이 바람에 비벼대다 뜨거운 온도에 불이 붙기 때문이다. 기름을 머금은 유칼립투스는 산불을 더욱 키운다. 인간의 힘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할 만큼 수십일간 계속되는 산불은 말 그대로 숲을 초토화한다. 그런데 이 잔인한 파괴 속에도 반전이 있다. 유칼립투스는 본체는 타도 밑동이 살아남아 여기에서 새로운 줄기와 잎이 다시 나온다. 늙은 몸을 버리고, 새 몸을 얻는 셈인데. 이걸 전문용어로는 ‘리그노튜버(Lignotuber)’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덩치 큰 유칼립투스가 타면 그 밑에서 웅크리고 있던 씨앗들이 드디어 싹을 틔울 기회가 찾아온다. 숲이 몇 년도 안 돼 다시 일어서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칼립투스를 키울 수 있다. 요령은 자생지를 기억하면 된다. 영하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니 겨울엔 실내로 들이고, 햇볕·바람이 적당한 남쪽 창가에 둔다. 물은 매일 주기보다는 흙이 마른 후 흠뻑 주는 방식이 좋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