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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맛, 진짜 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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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바레인에 한국인 노동자 수천 명이 일하러 가게 됐어요. 한국인들은 김치 없인 밥을 못 먹으니까, 한국 업체가 김치 납품을 하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일이 잘 안 됐던 모양이에요. 김치 납품 건이 수포가 되게 된 거예요. 김치 공장에서 김치를 잔뜩 준비했는데 팔 곳이 없어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안 되겠냐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일본에 팔아보겠다고 했어요. 그게 한국 김치 수입의 시작이었어요.”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김치의 날’ 행사에서 일본 시민들이 김치 담그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김치의 날’ 행사에서 일본 시민들이 김치 담그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지난 23일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가부키초(歌舞伎町) 김치 축제장. 한국 ‘김치의 날(11월 22일)’이 일본기념일협회에 기념일로 등록된 걸 알리기 위해 열린 행사다. 익숙한 김치 브랜드들 속에 낯선 이름 하나가 보였다. 산키(三輝)다. 지난 1986년 일본에서 처음 한국 김치를 수입한 회사로, 지금껏 한국 거래처를 유지하며 한국 김치맛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다. 신카와 유키야(新川幸也) 대표가 통에 든 김치를 보여주면서 말한다. “한국식으로 김치 위에 양념을 이렇게 얹어서 팔고 있어요.” 한국 어머니들이 하는 그대로 김치를 담그고 남은 양념을 김치 위에 얹는다는 얘기다. 배추도 한국산, 양념도 모조리 한국산. 모든 걸 한국에서 만들어 그대로 들여와 판다.

김치를 수입해 파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상가를 돌며 납품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마늘 냄새난다”며 손사래 치던 상인들은 한류 붐이 일면서 김치를 하나둘 받기 시작했다. “올해로 37년째인데 한국 김치의 참맛을 그대로 지켜가는 것이 목표”라는 신카와 사장의 말은 일견 비장하게 들렸다. 왜일까. 그 배경엔 일본 김치 시장의 구조가 있다. 김치 최대 수입국인 일본에서 김치는 ‘대유행’ 중이다. 동네 마트는 물론 편의점에서도 김치를 팔 정도다. “일본 소비자 90%가 냉장고에 김치를 두고 먹을 정도로 김치 대중화가 이뤄졌다”(윤상영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도쿄지사 본부장)는 조사 결과도 나올 정도.

하지만 일본 김치 시장의 대부분은 일본 회사들이 일본 배추로 만든 일본산 김치가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달큰한 일본 김치에 익숙하다 보니 한국 김치를 샀다가 조금만 익어도 “상했다”고 한단다. 발효된 맛, 묵은지의 깊은 맛, 감칠맛을 아직 일본 소비자들이 몰라준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김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한국 김치 맛을 알려야 김치가 일본에서 사랑받는 것”이란 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 93개국 수출이란 김치의 성적표도 중요하지만, 진짜 김치의 맛을 알리는 데에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