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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1차장 업무 첫날부터 엇박자, 원내 뒤숭숭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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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프랑스 순방에서 귀국한 지난 26일 후임 국가정보원장을 정하지 않은 채 김규현 국정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반복되는 인사 잡음 때문이었다. 특히 정부와 기업이 모두 뛰어들어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한 막판 총력전을 벌이는 가운데 최일선에서 관련 정보전을 수행해야 하는 국정원이 공개적으로 기강 해이를 보인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오는 28일(현지시간) 개최지 선정 투표가 진행되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에서는 주재 공관을 중심으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유치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게 외교 소식통의 설명이다. 한국이 접촉한 상대가 알려지면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자들이 곧바로 해당 국가를 다시 방문해 후한 ‘오일 머니’를 제시하는 등 막판 표 단속이 한창이다.

윤 대통령이 파리에서 막판 유치전을 펼치는 가운데 기민한 정보전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국정원에서 잡음이 불거져 나온 걸 더 엄중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국정원장 연말 교체설은 몇 달 전부터 흘러나왔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점도 윤 대통령의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전·현직 정보라인에선 인사 파동의 본질을 김 전 원장 측근 그룹과 이에 맞서는 그룹 간 알력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한 소식통은 “김 전 원장은 부임 때부터 1차장과 엇박자를 보였다”며 “1차장이 미리 뽑아놓은 비서실장을 김 전 원장이 몇 시간 만에 측근으로 교체하는 초유의 사태로 원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내에선 국정원장 교체를 두고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내 사람에겐 기회를 주고 품으며 기다려 주지만, 두 번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인사 철학을 유지해왔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지난 6월 국정원 1급 부서장 등 7명의 보직 인사를 일주일 만에 번복한 인사 파동 이후에도 국정원 내 인사 파동이 잦아들지 않았고, 윤 대통령이 몇 달간 인내하다 이번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27일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새 정부에서 맡은 바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했고 상당한 결실도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의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기관인 국정원을 바로 세우고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충분히 기대에 부응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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