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말모이’ 주역 3인의 고향 의령…“국어사전박물관 짓자” 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20면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사전 편찬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사전 편찬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말과 글이라는 게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인데, 그렇게 사라진 우리 조선말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2019년 개봉한 영화 ‘말모이’에 나오는 대사다. 말모이는 한국에서 최초로 편찬을 시도한 국어사전 원고로 ‘말을 모은다’라는 뜻이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자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은밀히 『조선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조선어학회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일본 경찰에 발각, 조선어학회 회원과 관련자 33명이 치안법상 내란죄 혐의로 붙잡혀 혹독한 고초를 겪는다. 1942년 10월 실제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해방 후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1957년)』은 우리말 사전의 초석이 된다.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작업에서 총괄·재정·실무 등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 3명이 경남 의령 출신이다. 영화 속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의 실제 모델인 고루 이극로(1893~1978년) 선생을 비롯한 남저 이우식(1891~1966) 선생, 한뫼 안호상(1902~99년) 선생이다.

해당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말모이’ 한 장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해당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말모이’ 한 장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때문에 의령에서는 이들 독립운동가 정신을 기려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건립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 추진위원회는 오는 29일 의령군민회관에서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4차 학술대회’를 연다. 서정목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등 학계·교육계 인사가 주제 발제와 토론자로 참여한다. 2020년 10월 민간 주도로 발족한 추진위는 매년 학술대회를 열어 국어사전박물관 건립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국어사전박물관 의령 건립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었다. 경남도와 의령군도 지자체 핵심사업으로 박물관을 짓기로 하고 정부 예산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간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재원 조달 등을 요청해왔지만, 확정적인 답변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1957년 6권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 [사진 문화재청]

1957년 6권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 [사진 문화재청]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목숨 걸고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이우식·이극로·안호상 선생은 ‘문화 의병장’이었다”며 “후손들이 이들 선열의 정신을 살려 고향인 의령에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추진위 등에 따르면 이우식과 이극로·안호상은 조선어 독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가장 연장자이자 ‘만석꾼 부자’ 이우식은 조선어학회 살림살이에 기여했다. 1936~42년 동안 사전 편찬과 기관지 발행을 위해 조선어학회에 1만7190원(현 17억1800만원)을 후원했다. 또 비밀리에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도 조달했다.

이극로는 당시 조선어학회 간사장(현 한글학회장)을 맡아 사전 편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해방 후 정부 수립(1948년) 때 초대 문교부장관을 맡아 한글 공교육 초석을 다진 안호상은 사전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의 사전 편찬 작업을 계기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 ▶사정(査定)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마련한 것이 큰 성과라고 학계는 평가한다. 이를 통해 어문 규범이 제정, 우리 말 표기의 일관성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이 분단됐지만 ‘언어 이질화’가 적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