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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정원장 전격 경질, 무너진 기강 다잡는 계기 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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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23일 당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전 1차장, 김 전 원장, 김수연 전 2차장.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23일 당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전 1차장, 김 전 원장, 김수연 전 2차장. [국회사진기자단]

윤 대통령, 김규현 원장과 1, 2차장 교체 단행

커진 안보 위기 속 최고 정보기관 역할 다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권춘택 1차장(해외 담당) 및 김수연 2차장(대북 담당) 등 핵심 수뇌부를 전격 경질했다. 영국 국빈 방문과 프랑스에서 열린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외교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내려진 갑작스러운 인사다. 그동안 국정원에서 몇 차례 볼썽사나운 내홍이 외부로까지 알려지면서 원장 교체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래도 지휘부 동시 경질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은 이미 몇 차례 국가 최고 정보기관답지 않은 행태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던 조상준 기조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표를 냈고, 지난 6월에는 대통령이 재가한 국정원 1급 인사안이 뒤집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장 측근 인사와 그와 친분이 있는 간부들이 승진 대상에 포함됐다는 의혹을 샀다. 얼마 전에는 원장과 1차장이 조직 주도권을 놓고 암투를 벌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밀을 다루는 정보 조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논란에도 윤 대통령은 김규현 전 원장을 재신임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방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 정보기관의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고, 그 잡음이 외부에까지 노출된 이상 책임자들의 문책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정보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은 지난달 초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민간인 등 1400명이 살해되는 비극을 생생히 지켜봤다. 세계 최강이라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정치적 노선 차이에 따른 내부 갈등으로 정보 수집과 판단 기능이 마비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오각성이 없다면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실패가 국정원의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국정원장 후보자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새 원장 정식 임명 때까지 홍장원(전 주영 공사, 육사 43기)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을 1차장으로 임명해 당분간 직무대행 체제로 가기로 했으나, 국정원의 특성상 이런 임시 체제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이어 군사정찰위성까지 발사할 정도로 안보 위협이 커진 상황이다.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이 내홍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후임 국정원장에 최적임자를 신속히 임명해 조직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국정원도 이번 전격적 인사를 해이해진 국정원의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는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院訓)을 다시 새기며, 새 안보 위협 속 정보기관의 역할을 다잡아야 흐트러진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