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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나시레마족 주술을 거부하는 서울대발 교육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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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나시레마(Nacirema)라는 부족이 있다. 남자들은 매일 날카로운 도구로 얼굴을 괴롭히고, 여자들은 작은 오븐에 머리를 굽는다. 입 안에 마법의 분말을 넣는 의식을 수행한다. 기이한 주술에 사로잡힌 원시종족이 연상될 것이다. 사실은 1950년대의 미국인들이 면도하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양치질하는 일상의 장면일 뿐이다.

나시레마는 허구의 소수 부족이다. 아메리칸(American)의 철자를 역순으로 쓴 언어 유희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호레이스 마이너가 다른 문화권 사람의 오해와 편견을 풍자하기 위해 쓴 글 『나시레마 부족의 몸의례(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한국, 오리엔탈리즘 극복엔 성공
모방 아닌 창조형 인재 넘쳐나야
성장률 5년 1% 하락 법칙 깨져
개별성 존중, 이타성 확보가 관건

서구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비판한 대로 오랫동안 동양을 타자화했다. “너와 나는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하겠다”는 제국주의의 오만이었다. 서구는 문명의 주역이고, 동양은 열등하고 비논리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냈다. 동양인들은 서구의 비틀린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응시하고 정체성을 갖게 됐다. 서구를 모방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한국은 이 모욕의 과정을 뼈저리게 겪은 뒤 실력으로 절정의 국가 파워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열등생에서 우등생으로 변신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 경제의 진짜 성장 능력을 나타내는 장기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5년 1% 하락의 법칙’이 마법이 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루커스 교수는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 비결이 인적자원의 성공적인 축적에 있다고 분석했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신생국 대통령 이승만은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전쟁 중 피란가서도 천막학교를 열고 대학 강의까지 계속했다. 선진 기술과 지식을 모방하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돼 부자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이 만든 ‘20년 특허의 벽’에 부닥쳐 모방이 쉽지 않게 됐다. 그래서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고 김세직 교수는 역설한다.

김 교수는 물리학자인 오세정 전 총장이 주도하는 국가미래전략원(원장 김병연 경제학부 교수) 교육개혁 태스크포스의 일원이다.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총장과 함께 창조형 강의를 고안했고, 18년째  적용하고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던진 ‘정답 없는 과제’ 중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화폐를 상상해 제시하시오”도 있었다. 그는 “2008년 비트코인이 나오기 전에 누군가가 답을 제시했다면 세계 제1의 부자가 되고,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크게 도약했을 것”이라고 했다. 종강 후 스스로 창의성이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학생의 비율은 90%가 넘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토론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자세를 체화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아예 입시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쓸모없는 기존 지식을 반복해서 암기하는 모방형 시험 대신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통해 창의력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조적 CEO를 배출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주입식 사교육이 무의미해져 GDP 대비 세계 1위인 사교육비도 확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학 분야에서도 창조형 강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대 교육개혁 태스크포스의 또 다른 일원인 김윤영 기계공학과 석좌교수는 배우는 것을 줄이고 많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공학은 기술로 문명을 발전시키는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서구 선진국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서 정체되지 않으려면 모방이 아닌 창조를 통해 우리 문명의 표준을 우리의 언어로 세울 필요가 있다. 경제를 넘어 문화까지 강한,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인(萬人)의 개별성과 고유성이 존중돼야 한다.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 시조(始祖) 의상(義湘)은 “작은 티끌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다(一微塵中 含十方)”고 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느낌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해진다. 비로소 타인을 존엄한 존재로 기꺼이 수용하는 이타성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자유로움 속에 창조의 에너지가 솟구치게 된다. 각기 다른 너와 내가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살아남는 데 반드시 필요한 내부 통합이 가능하고, 진영논리로 병들어 있는 민주주의도 건강해진다.

독자적 문명을 건설할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는 ‘서울대발(發) 교육혁신’은 관학(官學)의 타성을 거역하는 일대 사건이다. 타인의 시선, 나시레마의 최면에서 깨어나 저 눈부신 광장으로 걸어가는 과정이다. 성공해서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난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