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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표현의 자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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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소셜미디어 플랫폼 X(옛 트위터)를 인수한 세계 최고의 부자 일론 머스크가 반(反)유대주의 발언에 동의한 뒤로 애플·IBM·디즈니 등 주요 기업의 광고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그마치 55조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트위터를 인수한 이유가 다름 아닌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머스크는 근래 들어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콘텐트 모니터링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용된다고 주장하며, 도널드 트럼프 등 그동안 금지됐던 회원들을 복귀시키고 모니터링 부서를 80%나 줄이기도 했다. 그 결과 혐오 표현과 폭력적인 발언, 아동 포르노 등 부정적인 콘텐트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아 논란이 됐다.

아메리카 편지

아메리카 편지

하지만 현대 미디어가 거치고 있는 검열 과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는 참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와 근본적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후반 아테네에서 설립된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 사상인 ‘이세고리아(isegoria)’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표현의 권리다. 정치적·경제적·종교적인 소속과 관련 없이 만 30세 이상의 시민은 그리스의 집회인 에클레시아(ekklesia)에서 누구든지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신성모독죄’와 ‘젊은 세대를 타락시켰다’는 빌미로 사형당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이야기는 이세고리아에 직접적으로 대립된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한 아테네는 30인 과두정권을 겪고 또 내전이 일어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정치 혼란이 언론의 자유를 저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양쪽 진영이 합의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도 보편적인 선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