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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 없던 ‘싸움닭 정신’ 심었다…권영수 부회장의 다음 행선지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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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2011년 말 LG그룹 인사에서 권영수 당시 LG디스플레이 사장(CEO)은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으로 이동했다. 직위는 같은 사장이지만 CEO에서 격(格)이 낮아진 사업본부장이 됐다. 그룹 안팎에서 뒷말이 나왔다. 당황한 것은 권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LG 관계자는 “당시 권 부회장이 사흘간 잠적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며칠 뒤 나타난 그는 고(故) 구본무 당시 회장과 낮술을 나눴다. 그러면서 “배터리 사업에 저를 보낸 이유가 있으셨을 텐데 깊은 뜻을 이제야 이해했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후 권 부회장은 LG화학에서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의 주춧돌을 쌓는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전문경영인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이제껏 LG에 없었던, 독보적인 존재감의 경영스타일”이라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영원한 LG맨’ 권영수(66) 부회장이 LG를 떠난다. 26일 LG그룹에 따르면 권 부회장의 용퇴 이후 예우를 위한 내부 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다. 1979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한 지 44년 만이다. 그는 45세 나이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에 오른 뒤, LG디스플레이 CEO→LG화학→LG유플러스→㈜LG 등에서 17년간 최고 경영진을 지냈다.

기업가로서 혜안이 돋보였다는 게 재계 평가다. LG디스플레이 CEO 시절 그는 애플 아이폰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애플에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공급하며 협력 관계를 맺었다. LG유플러스 부회장을 맡아서는 당시 케이블TV 1위 사업자 CJ헬로비전(현 LG헬로비전)을 인수하고 만년 3위 사업자에서 벗어나는 기반을 닦았다.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에는 LG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LG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구 회장 체제의 안착에 기여했다. 2021년에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 자리를 옮겨 기업공개(IPO) 등을 이끌며 오늘날 LG의 배터리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의 모습. 뉴스1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의 모습. 뉴스1

그룹 안팎에서는 권 부회장이 조직에 도전정신과 근성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한다. LG 관계자는 “그동안 LG에는 1등을 하려는 야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권 부회장 이후 한 번 경쟁이 붙으면 반드시 승부하는 싸움닭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권 부회장이 조만간 기업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각에서는 포스코그룹 등이 권 부회장의 ‘다음 행선지’로 거론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LG에 (상근고문으로) 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구본무 선대회장의 최측근이면서도 구광모 회장의 핵심 참모 역할을 맡았던 그의 용퇴에 대해 ‘구광모 시대’로 본격적 세대교체 신호탄이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LG 관계자는 “LG 역사의 한 시대가 마무리됐다는 상징 같은 인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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