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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재미없음을 못 견뎌요"...장르 그 자체된 '나솔' 그 남자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연애 예능 춘추전국시대에도 ‘나는 SOLO’(나는 솔로)의 화제성은 독보적입니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등 여느 연애 예능에선 공식이 된 화려한 등장인물도, 영화 같은 장면도 없는데 말이죠.

‘나솔'은 주변에서 봤을 법한 일반인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현실형 예능입니다. 그 뿌리는 2011~2014년 방영한 SBS ‘짝’입니다. 애정촌에 싱글 남녀를 모아놓고 소개팅하는 ‘짝짓기 리얼리티 쇼'는 수많은 패러디를 낳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크닉은 ‘짝’부터 ‘나는 솔로’까지 현실형 연애 예능을 하나의 장르로 구축한 남규홍 PD를 만났습니다. 나는 솔로 출연자라도 된 듯, 떨리는 마음으로 서울 목동 촌장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찾아갔습니다.

'나는 솔로'와 '나는 솔로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를 제작하는 남규홍 PD.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나는 솔로'와 '나는 솔로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를 제작하는 남규홍 PD.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예능'이 아니라 '다큐'입니다

SBS 교양국 PD로 입사해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연출한 남규홍은 교양 PD답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일에 능숙합니다. ‘짝’도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시작했습니다. 2011년 ‘SBS스페셜’에서 ‘나는 한국인이다-짝’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그는 사람들이 짝을 찾는 순간부터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한국인의 인생관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해요.

남규홍 PD가 지금까지 만든 프로그램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일입니다. ‘짝’ 계보를 잇는 ‘나는 솔로’에서도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16기 영숙이 상철에게 미국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짜증 내는 장면이나 광수와 영철이 비디오를 돌려보자며 대립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감추고 싶은 사적인 감정들을 방송에서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여기서 시청자는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삶의 모습을 맞닥뜨리죠.

16기 영숙과 상철의 갈등 장면.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쳐.

16기 영숙과 상철의 갈등 장면.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쳐.

“방송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우리 정서나 사회 현실과 동떨어지면 아무 소용 없거든요. 피부에 확 와 닿으려면 나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해요. 마치 내가 출연하는 것처럼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구경하는 거죠. 공감하는 게 아니고.”

리얼리티의 힘이 통한 덕분인지 ‘나는 솔로’의 커플 매칭 성적표도 좋습니다. 매 기수에서 커플이 탄생했고, 7쌍의 커플이 현실 속 부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시청자는 크게 열광했죠.

무조건 새로워야 한다

나는 솔로가 사실적인 연출만으로 인기를 얻은 건 아닙니다. ‘나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연출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거든요. 남 PD는 사람들이 ‘나솔’만의 스타일을 인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포맷을 반복적으로 노출한다고 했습니다.

“‘나솔’을 계속 보는 분들은 프로그램의 색깔을 인지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아무렇게나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계속 보면 포맷이 보이죠. 옥순, 영철, 영숙 등 가명을 쓰는 것도, 방송 중간 인서트 컷에 등장하는 문구도 이제는 '나솔'만의 형식이라고 여기죠. 그걸 노린 거예요.”

'나는 솔로' 촬영장에서 현장 감독 중인 남규홍 PD.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나는 솔로' 촬영장에서 현장 감독 중인 남규홍 PD.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방송 프로그램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도 PD로서 그의 지론이에요. 끊임없이 남다른 방식을 고민하는 이유죠.

“시청자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는 목표로 만들어요. 일단 재미있어야죠. 내용도 충실해야 하고요. 교양 PD는 대부분 재미 요소는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재미없음을 못 견뎌요. 괴롭더라고요.”

1분 만에 정하는 '옥순'⋯케미는 하늘에 맡긴다

그가 재미 요소를 발견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현장의 흐름에 맡기는 거였죠. 그는 방송의 큰 흐름만 잡고 나머지는 되는대로 대응한다고 했습니다.

16기에서 진행한 ‘박스 속 여성 출연자 손 찾기 게임’이나 17기 ‘2순위 데이트’는 출연자들이 놀랄 정도로 참신한 아이디어였는데요. 이 역시 계획된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16기에서 진행한 '박스 속 여성 출연자 손 찾기 게임'.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쳐.

16기에서 진행한 '박스 속 여성 출연자 손 찾기 게임'. 사진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쳐.

“흐름상 예정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2순위 데이트를 해버렸죠. 제가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해요. 지겨워질 때쯤 새로운 방식으로 흐름을 확 뒤집어 놓으면 효력을 발휘해요. 더 새롭고 재밌어지죠.”

연애 프로그램에선 출연자 간 ‘케미’도 중요합니다. 2년 반 전 인터뷰이가 현재 방영 중인 17기 옥순으로 합류해 화제가 됐는데요. 남 PD만의 출연자 조합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과연 그의 수첩엔 몇 명의 옥순이 있을까요? 돌아온 그의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출연자 케미는 하늘에 맡겨요. 될 대로 되라고 놔두죠” 이제는 ‘나는 솔로’만의 특색이 된 가명 사용도 출연자가 다 정해진 뒤 ‘대충’ 1분 안에 정한다고 했습니다.

“잠깐 가볼 걸 그랬나. 30초만요.”

남 PD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인터뷰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솔로' 후보 인터뷰를 잠깐 보고 온다는 거였어요. 한 사람이 프로그램 전체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출연자 선정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면서요. 일부러 빌런을 출연시킨다는 오해와 달리 그는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괜찮은 사람”이 출연 기준이라고 담백하게 답했습니다.

마무리

그의 한 가지 소망은 시청자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래요.

“한 청년이 중년이 될 때 '나는 솔로'와 함께 인생을 살았다고 여기면 좋겠어요. 시청자들이 프로그램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을 위해 잘 만들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에게 슬쩍 물었어요. 사랑 전문가로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냐고요.

“누군가를 좋게 보려고 하면 좋게 보여요. 나쁘게 보려 하면 나쁘게 보이고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얻고 싶다면 좋게만 보세요. 긍정적으로 보세요. 은연중에 안 좋은 걸 보면 끝장이죠. 그래서 (11월 1일자) 방송에도 쓴 거예요. ‘헤어질 이유를 찾으면 잘나가던 사랑도 비틀댄다.’”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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