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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왜 일만해?" 울던 빈대떡집 딸, 광장시장 힙플로 만들다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모습. 사진 365일장.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모습. 사진 365일장.

정겹지만 올드했던 광장시장에 힙한 걸 찾는 MZ들이 모이고 있어요. 성수동에서 줄 서서 먹는 카페가 들어서고, 유명한 브랜드와의 팝업이 열리고 있어요. 광장시장의 인기가 반짝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지는 데엔 이유가 있겠죠?

비크닉 브랜드 소개팅, 오늘은 광장시장에서 탄생한 브랜드 MIG(메이드 인 광장)와 함께 광장시장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해볼게요.

광장시장과 만나 더 힙한 카페 어니언, 플리츠마마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입구에 자리한 카페 어니언.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입구에 자리한 카페 어니언.

광장시장에 새로문을 연 플리츠마마

광장시장에 새로문을 연 플리츠마마

지난 9일 찾은 광장시장. 제법 추운 날씨인데도 초입부터 줄이 길게 서 있었어요. 붕어빵을 먹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바로 옆에는 카페 어니언에 들어가려는 손님들이 가득했어요. 성수동의 힙플로 유명한 카페 어니언이 지난해 광장시장 모퉁이에 들어선 건 힙스터들에겐 굉장한 뉴스였습니다. 힙플의 성지, 트렌드의 대표주자가 전통시장을 택한 거니까요.

인파를 뚫고 광장시장으로 들어가면 플리츠마마 간판이 나타납니다. 지난 8월 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 2호점이에요. 100년이 더 된 전통시장에 첨단 기술로 만든 친환경 소재 가방 브랜드가 들어선 거죠!

건너편 사과당에선 달짝지근한 파이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겼는데요. 충남 예산시장에서 유명한 애플파이집이 광장시장에 입성한 거랍니다. 사과 파이 굽는 냄새가 바로 앞 김밥과 오뎅, 비빔국수를 파는 노점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리더라고요.

혼자 떡볶이를 먹는 할머니에게 “맛 한번 봐달라"며 무심한 듯 튀김을 한 개 더 얹어주는 상인, 오손도손 수다 떨며 김밥을 마는 모녀 상인, 서툰 한국어로 가격 흥정하는 외국인들까지. 정겨움은 여전했습니다.

메이드 인 광장, 브랜드가 되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위치한 365일장의 모습. 365일장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위치한 365일장의 모습. 365일장

전통과 트렌드가 만나 독특한 바이브를 만들어내는 광장시장 한복판에 눈에 띄는 곳이 있는데요. 바로 녹색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365일장’입니다. 2년 전 문을 연 광장시장 최초의 편집숍입니다.

아기자기하고 디자인 제품이 잔뜩 전시돼 있었는데 인테리어 소품이나 기념품과는 달리 묘한 애틋함(?)이 느껴졌어요. 광장시장 상인들을 찍은 엽서, 광장시장 역사가 적힌 노트를 보니 오랜 세월 서민과 함께한 역사적인 곳이었다는 게 실감 나더군요.

이 기념품에 붙어있는 상표가 MIG(메이드 인 광장)입니다. 주인장 추상미 대표가 만든 브랜드죠.

365일장에서 만든 색동저고리천 크리스마스 장식품

365일장에서 만든 색동저고리천 크리스마스 장식품

MIG 제품들. 왼쪽 파전과 막걸리 그림이 있는 마그넷 장식품, 오른쪽 광장시장 풍경을 담은 엽서.

MIG 제품들. 왼쪽 파전과 막걸리 그림이 있는 마그넷 장식품, 오른쪽 광장시장 풍경을 담은 엽서.

MIG 모든 제품은 광장시장에서 파는 소재를, 상인들의 손길로 만든 것들이라고 해요. 색동저고리 천으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시장 안 한복집에서 원단을 구하고, 바느질하는 분에게 디자인을 의뢰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자개가 아름다운 와인 따개 역시 전통 자개 장인에게 의뢰했다고 하고요.

“시장 물건은 반갑고 정겹지만, 퀄리티에 대한 기대는 많이 안 하죠. 하지만 디자인과 퀄리티가 좋아서 선물하고 싶은, 남에게 알리고 싶은, 그래서 재구매가 이뤄지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쪽에는 조선호텔과 함께하는 팝업을 준비 중이었는데요. 광장시장 팝업 성지인 이곳에선 제주맥주, 맵시 등 다양한 브랜드의 팝업이 열렸답니다. 얼마 전엔 중식 프랜차이즈 용용 선생과도 콜라보를 했고요.

상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던 빈대떡집 딸

지난 9일 3오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위치한 365일장 사무실에서 추상미 대표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지난 9일 3오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위치한 365일장 사무실에서 추상미 대표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추 대표는 3대째 내려오는 박가네 빈대떡집 딸입니다.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365일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시장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다 10년 전 몸이 안 좋아진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죠.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한 5년간은 장사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을 했대요. 그러던 어느 날, 단골이 툭 던진 말이 귀에 꽂혔답니다. “난 광장시장 오면 여기만 와.”

빈대떡도 브랜드가 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온 거죠.

“사람들이 고유의 매력을 느끼고 재방문을 하고 남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면 그게 브랜드가 아닐까 싶었어요. 우리는 인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비로소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머지않아 코로나19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40년 넘게 시장과 함께 온 그에게 시장이 문을 닫는 건 충격적인 일이었죠. 다시 ‘브랜드’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시장이 죽으면 우리도 죽겠구나 싶었어요. 브랜드가 굳건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찾을 거라 생각했어요. 광장시장을 알리는 브랜드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100년 넘는 세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광장시장은 그 자체로 이미 좋은 브랜드인지도 모르지만요.”

가게 이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장이 열리는 광장시장을 의미하는 ‘365일장’이라고 지었습니다. ‘엄마는 왜 365일 일만 해?’ 어릴 적 엄마에게 했던 원망 섞인 말을 간판으로 내세운 겁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던 부모님에게, 또 상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어요. 광장시장을 더 멋진 곳으로 만들고, 좋은 문화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이 찾게끔 하는 거죠. 365일장이 내세우는 키워드가 바로 상생, 공간, 위로예요.”

100년 넘게 쌓인 이야기 꺼내면 그게 브랜드

추 대표는 전통시장의 경쟁자는 대형마트가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처럼 깔끔하게 제품을 포장하고 화려해질 순 없어요. 고객들도 그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이 제품을 정성껏 만들었는지, 공수해왔는지 이야기한다면 고객분들도 재밌어할 거라 저는 믿어요. 우리 전통시장만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상인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마케팅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요. 수십년간 이바지

음식을 전화 주문으로만 받던 폐백집이 ‘우리가 아침에 직접 만든 떡이에요’ 같은 스토리를 입히기 시작했대요. ‘우리도 재밌는 걸 할 수 있구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구나’라며 상인들 자신감도 쑥 올라갔죠.

하지만 전통시장이 트렌드만 좇게 되는 건 아닐까요? 전통시장이 지켜야 하는 게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추 대표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늙어가길 바란다”고 말했어요.

“늙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다만 낡아지지 말았으면 해요. 역사가 쌓이는 건 고귀한 일이에요. 100년 된 전통시장이 낡지 않도록 다듬고 새로운 트렌드도 입혀 보고 가꾸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닐까요.”

광장시장에서 한평생 일한 재봉집 사장님. 사진 365일장

광장시장에서 한평생 일한 재봉집 사장님. 사진 36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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