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지막 보루 문 잠궜다…연이율 3만6500% 부른 금리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법정 최고금리 인하 딜레마

9일 수원지검 형사1부는 연 최고 3만6500%의 이자를 받아 폭리를 취한 무등록 대부업자 A씨(29)를 대부업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 했다. A씨는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서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이를 갚지 못하면 연장비 명목으로 폭리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게 50만원을 빌린 한 피해자는 8개월 뒤 연이율 1545%에 해당하는 539만원을 갚기도 했다.

고금리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출이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업체가 판을 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불법 사금융 특별단속 기간을 운영한 결과 올해 1~9월 중 불법 사금융 관련 검거 건수가 지난해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불법 사금융 관련 신고 및 상담 건수도 3.8% 증가해 4만7187건이 접수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9일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불법 사금융 피해로 노예화, 인질화까지 벌어지는 등 집단화·구조화되고 있다”며 “불법 사금융을 끝까지 추적해 처단하고 불법 이익도 전액 박탈하라”고 지시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수년 새 불법 사금융이 폭증하게 된 건 세계적인 고금리 현상이 지속하면서 제1금융권, 제2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진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로금리에 가깝던 코로나19 이전에는 과거 신용등급으로 6등급까지는 제2금융권에서 대출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5등급도 대출이 어렵다”며 “대출을 내줄수록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업체는 물론 카드·캐피탈사까지 모두 곳간을 걸어 잠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법 사금융 범죄가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게 된 본질적인 원인으로는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내려간 법정 최고금리가 지목된다. 2002년 대부업법 개정으로 연 66%로 결정된 법정 최고금리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인하됐다. 2018년과 2021년에는 정부가 서민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저금리 기조에 발맞춰 최고금리를 지금의 연 20%대까지 하향 조정했다. 당시 정부는 약 208만명의 대출이용자가 이자 경감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며 최고금리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인하할 것을 목표로 세웠다.

최고금리 인하로 직격탄을 맞은 건 제도권 대출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다. 수신(예금)기능이 없는 대부업체는 통상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2금융권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최고금리 인하와 기준금리·조달금리 동반 상승이 맞물리면서 채산성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계 대부업체인 산와머니는 최고금리가 27.9%에서 24%로 낮아진 2018년 이후 신규 대출을 중단했으며, 2021년에는 웰컴금융그룹의웰컴크레디라인대부가 사업을 정리했다.

지난달 19일에는 국내 1위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가 대부업 라이센스를 반납하는 등 그야말로 ‘탈출 러시’가 벌어지고 있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최고금리가 최소 25%는 돼야 비용충당이 가능한데, 최고금리를 올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내리겠다는 정책만 나왔다”며 “자본 규모가 큰 회사들부터 업계에서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부업계의 가계신용대출 신규 취급액은 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분의 1가량 줄었다.

대부업체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결국 신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민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8년 17조3000억원에 달했던 대부업계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15조8000억원으로 약 9% 감소했다. 같은 기간 221만명에 달했던 대부업계 이용자도 98만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반면 이용자 1인당 대출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8년 1047만원에서 1604만원으로 약 50% 증가했다. 언뜻 보기에는 대부업 이용자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 이용자들이 대출 승인을 받지 못해 제도 밖으로 떠밀려났단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2021년 말 대비 조달금리가 약 2%포인트 상승했던 2022년 6월 신용대출이 가능했던 차주 약 69만명이 대부업 또는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조달금리가 지난해 대비 3%포인트가량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더 많은 취약차주가 사금융으로 내몰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서민부담을 낮추겠다는 좋은 취지의 시도가 역설적으로 시장의 기능을 망가트렸다”며 “공급활성화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향후 2금융권, 1금융권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불씨가 번질 수 있다”고 전했다.

결국 불법 사금융을 뿌리 뽑기 위해선 대출 시장의 공급 물꼬가 트여야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시장금리의 변화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를 유동적으로 결정하는 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에 목소리를 높인다. 김 교수는 “민관합동으로 금리 결정위원회를 만들어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대출 시장이 활발해질 수 있다”며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불법 사금융 문제를 뿌리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최고금리를 조절해 더 많은 대출을 승인하는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소비자연구실장은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 금리까지 조절해가면서 대출을 내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대부업체 이용자들의 상환능력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